행복한 내향인 관찰 일지 06.
행복한 내향인인 구남친 현남편은 연애 전에도 혼자서 이미 행복할 수 있는 삶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연애 중반까지도 일주일에 2번 날을 정해서 만나는 것이 이어졌다.
하지만 연애 초반에 한창 불타오르는 나로서는 이렇게 정해진 날에 데이트하고 만나는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미 학창 시절, 사회 초년생 시절 내내 고민을 통해 행복과 루틴을 세운 그는 현재 곱씹고 있는 인생의 고민도 크게 없었다.
연애 초반, 서로를 알아갈 때 서로 경험들을 나누고, 이런저런 힘든 일에 대한 대화도 하는 것을 예상했던 나는 초반에는 그가 자신의 곁을 많이 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지만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때가 한창 일로 힘들던 시기여서 자주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조용히 잘 들어주기만 하는 그를 보며 이런 말은 안 하는 성격인가 보다.라고 막연히 (조금은 서운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내향적인 본인의 성향만큼 깊이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타입이었고,
놀랍게도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었다.
이 점을 알게 된 3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오늘의 글은 그중 첫 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Ep.1 기준은 너에게 맞출게
이것은 우리가 처음 함께 호주로 여행 갔을 때의 일이다
첫 여행을 가기 전 과연 이 친구와 거의 2주 붙어있으면 어떨까 막연한 걱정이 되었다.
구남친 현남편이 워낙 무던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그전까지도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2주 해외여행은 꽤 긴 시간이었으므로.
하지만 결론적으로 첫 여행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우리는 서로가 굉장히 좋은 여행 메이트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마지막 여행지였던 케언즈에서 그가 했던 말은 아직도 내 인생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말 Top3> 안에 드는,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다.
앞서 말했듯이 그 당시 하던 일에 대해 회의감이 많이 들던 시기였다.
좀 더 공부를 해서 직종을 바꿔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서 데이트 때마다 구남친 현남편에게 지금 고민되는 부분들과 현재 상황에 대해 고민 상담을 많이 했다.
케언즈의 한 로컬 식당,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따스한 공기와 왁자지껄한 사람들, 저녁 시간대에 접어들면서 밖에 달린 알조명들이 하나둘 켜지던 광경이다.
그런 예쁜 배경을 두고 해외에서 더 공부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그와 논의하던 때, 구남친 현남편이 평소와 똑같은 말씨로 말을 시작했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나는 행복하기에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
나는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꺼내나 싶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었다.
나는 3가지면 되거든. 이렇게 여행 다니고,
자기랑 손잡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운동할 시간이 있으면 행복해.
그런데 내가 봤을 때 자기는 행복하기에 나보다 좀 더 많은 것이 필요한 사람 같아.
그래서 자기한테 행복의 기준을 맞추면 우리 모두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덤덤한 말이 NT형 인간인 나의 마음에 와서 박혔다.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의 표정, 그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내가 파악하기로는 자기는 더 공부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꿈을 밖으로 펼칠 수 있어야 행복한 사람 같아.
그리고 꿈꾸는 자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세상이 좀 더 넓어져. 그래서 나는 최대한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우리는 행복할 것 같아.
아니, 이게 프러포즈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런 엄청난 말을 던지고 그는 당연한 말을 했다는 듯 다시 냠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밥을 한 숟갈도 더 먹지 못하고 오열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본 구남친 현남편은 오잉?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는 그런 감동적인 말을 해놓고 이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밥 먹는 사람이 어딨 냐고 웃으면서 울었다.
역시 나만큼 T인 그는 웃으면서 되물었다.
사실을 말했는데 왜 울어?
그때 나는 알았다.
행복한 내향인의 진심 고백 공격은 생각보다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두 번째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 읽어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하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남편도 감사하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