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내향인 관찰 일지 08.
내향인에게 ‘내 사람’으로 간택당하면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내향인들은 바운더리가 아주 작은 대신 깊기 때문이다.
우리 집 행복한 내향인 역시 그 바운더리’에만’ 집중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간다.
연애 끝 결혼 시작의 시작점에서 이점이 잘 느껴진 에피소드가 있어서 오늘은 이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Ep.3 생애 처음 남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는 결혼식에서
나의 결혼식 로망은 2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축무를 하는 것, 또 하나는 남편이 축가를 부르는 것.
오랜 댄스 동아리 생활로 다져진 나는 축무를 생각하면 그저 신이 났다.
반면에 일평생 남들 앞에서 노래를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남편에게 축가를 부탁하는 것은 왠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연애 시절 남편을 겪고 나서도 아직 내향인에 대한 오해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제 아시겠지만 남편은 내성적이지 않은 내향인이다. 즉, 그저 에너지를 외부보다는 내면에서 얻고 새로운 사람과의 모임보다는 집에서 영화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던 것.
그래서 걱정이 무색하게 그는 결혼식에서 축가를 직접 부르는 것에 대해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 이 아닌 ‘같이 영화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사람이 듣고 싶다고 하는 것’ 정도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게 남편은 흔쾌히 축가를 부르기로 결정했고 곧 어떤 곡을 부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후보들 중 그의 최종 선택은 이문세 님의 ‘소녀’라는 곡이었다.
이유는 2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그의 목소리와 음역대에 맞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함께 코인 노래방에 가면 내가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파트에서 항상 울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달 전부터 노래를 결정한 남편은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부터는 보컬 레슨을 받으며 '소녀'를 연습했다. 퇴근 후 코인 노래방에서, 주말 집에서 그는 가사를 곱씹고 음정을 다듬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래를 완성해 나갔다.
결혼식 리허설 시간, 처음으로 둘만 있는 공간이 아닌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약간은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내면에 집중을 해도 그 순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함께 눈을 마주치면서 집에서 연습했던 것처럼 함께 입모양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거짓말같이 떠는 것을 멈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중해서 잘 끝마치는 모습이 새삼 기특하고 감동적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남편은 평소보다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리허설 때문인지 눈빛만은 흔들림 없이 깊고 단단했다. 간주가 시작되자, 남편의 눈빛이 약간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나와 눈을 마주쳤고 내 표정을 보더니 오롯이 시선을 나에게 고정시킨 상태로 차분히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결혼식에 왔던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남편이 노래하는데 그 모습을 내가 너무 기특하게 바라봐서 내가 남편을 낳은 줄 알았다고 한다.ㅋㅋㅋ
남편의 노래 스타일은 기교 없는 담백함 속 깊은 울림을 주는 느낌이다. 그런 그의 노래 스타일처럼 축가를 부르는 내내 남편은 노래 스타일과 같은 눈빛으로 똑바로 나를 쳐다봐 주었다. 초반에 약간 목소리가 떨렸지만 그는 곧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았다. 그 후로는 노래와 상황에 온전히 몰입해서 부르는 것이 느껴졌다.
초반에 떠는 모습에 나도 같이 긴장했는지 중요한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파트에서는 막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신 함께 해낸 것 같은 기분으로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함께 함박웃음을 지었다.
노래가 끝나고, 식장 안은 따뜻한 박수로 가득 찼다. 우리는 끝났다!라는 표정으로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그는 오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줄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한 내향인 남편의 축가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깊고 진한 울림을 주는 선물이었다.
그의 작고 깊은 바운더리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라 나에게는 새삼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그 축가의 연장선이다.
그는 변함없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내면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작고 깊은 바운더리를 만들어서 내 옆을 지켜주고 있다.
브런치 덕에 연애 시절을 되새기니 새삼 몽글몽글 해지네요 ☺️
다음 글은 행복한 내향인의 운동과 식습관/ 행복한 내향인이 돈 쓰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