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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골책방 Feb 15. 2020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꿈의 내비게이션

원하는대로 쉽게 얻기만 하는 삶이 어디 있으랴...


기대를 갖고 원하는 대학 다섯 곳에 수시 지원서를 넣었던 아들은 한 곳에서도 합격 통지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내신 등급보다 이 삼등급이나 떨어진 수능성적표로는 자기가 만족할 만한 대학 어느 곳에도 이름을 내밀 수가 없었다. 

 

한동안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제 방에 틀어박힌 아들을 불러내기 위해 무수한 말들로 위로를 해 보았지만, 무엇도 아들의 마음에 가 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욕심으로 '그러게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니? 더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다'라는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아들의 모습을 볼 때 딱하고 속상했다. 결국 지가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할 몫이겠거니 하면서도, 나또한 제대로 못 먹고 못 잤다.


어느 날은 불쑥 재수를 한다고 했다가, 

어느 날은 아예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수능 성적에 맞춰 가서 반수를 하겠다고 했다.


갈팡질팡해 하는 아들의 모습이

마치 비를 흠뻑 맞고 오도가도 못하고 떨고 있는 새 같았다.


"살아보면 그깟 대학 이름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좋은 대학 안 나와도 잘 될 사람은 다 잘 된다." 라고 말하면서도 

제발 누군가, 하늘에 계신 높으신 님이 꿈에라도 나타나서

아들의 앞날을 알려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다가 정시를 쓰지 않겠다는 아들을 달래서 두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무기력 상태를 그냥 두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엄마, 합격이라는 말이 이렇게 좋은 건 줄 몰랐어요."

정시에서 합격을 확인한 아들은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가고 싶은 대학에서 너무너무 받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수험표를 넣어 확인할 때마다 간절하게 기도했던 말이라고,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나니까 실패한 인생 같았다고,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죄스러웠다고,

제 속을 털어놓았다.


얼마나 속상했을지, 또 얼마나 막막했을지, 울먹이는 아들의 몸에서

그동안 쌓여있던 실망과 두려움과 좌절과 자책까지

온갖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울어라. 실컷 울어라. 

비워라. 비워야 다시 시작할 힘도 생겨날 거다.

어쩌면, 아들의 인생에서 크게 작용할 첫 번째 실패이겠지만

잘 견뎌내고 이겨내었으면 싶었다.



그렇게 긴 울음을 토해내었던 아들은

일단 정시 합격한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정말 가고 싶었던 대학에 가기 위해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또 

반수를 할지, 편입을 할지, 수능을 볼지 정하겠단다.

아들의 인생길은 여전히 여러 갈래로 뻗어나 있다.



아들아! 살다보면 계속해서 여러 길이 나타날 거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란 걸 알지?
때로는 네가 정한 경로를 벗어나기도 하겠지만 잘못 들어선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돼.
누군가와 만나기로 하고 약속 시간에 늦는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네가 정한 꿈의 길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너니까
 미안해 할 것도 부끄러워 할 것도 없다. 
경로에서 벗어났다면 재탐색 버튼을 다시 누르렴.
네 꿈의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바로 너란 것을 잊지 말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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