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읽는가
나의 '내면 아이'를 들여다보다
습관적이라고 할 만큼 손에 책을 들고 살면서
왜 읽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큰 아이가 불쑥
엄마는 책을 왜 읽어요? 라고 물었다.
좋아하니까. 사서니까.
무심결에 목구멍으로 올라온 대답을 밀어넣고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비스듬하게 기울여 앉아있던 몸이 곧추세워졌다.
나는 왜, 읽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또 왜였지?
아스라한 기억들을 헤치고 들어가
책 속으로 숨고 싶었던 내 속의 감정들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엄마 나이 마흔 넷에 태어난 늦둥이 딸이었다.
부모님의 나이 차 또한 많이 나서 일곱 살일 때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했던 기억이 있다.
늦둥이로 태어나 사랑받고 자라면서 나는 행복하기도 했지만
자주 무섭고 외로웠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감정은 나를 혼자 있기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서 있다가 문득 엄마를 찾아 뒤를 돌아보았는데, 내 엄마만 머리 허어연 할머니였다.
그때 나는 세계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처럼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 우리 엄마는 일찍 죽겠구나. 내 부모님이 제일 먼저...'
여덟 살의 아이는 사람이 늙어서야 죽는 줄로만 알았다.
한 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 속에 박혀버리자 떨칠 수가 없었다.
입 밖으로 소리 내어서는 안 되는 비밀을 품은 것처럼 나는 점점 우울한 아이가 되어 갔다.
나이 차가 많은 언니 오빠에게도 속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고
그런 나를 주위에서는 내성적인 아이로만 알았다. 아무도 내 속에 자리한 우울을 알아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주 책 하고 놀게 되었다.
책 속에 들어가서 놀 때는두려움도 무서움도 외로움까지 잊었다.
나중에 죽음은 나이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나서도 그때 불쑥 느꼈던 죽음에 대한 감정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내 생각이 진실이 되어버릴까 무서웠던 것일 수도 있고 점점 늙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이 또 두려웠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류시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면 아이'라는 말에 대해 알게 되었다.
< 심리 치료 전문가 존 브래드쇼는 우리 안에 있는 '내면 아이(inner child)'에 대해 말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우리 안에 성장하지 못한 내면 아이가 있어서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불안한 심리를 초래한다는 이론이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어른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인격의 한 측면이 과거의 어느 시절에 고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에서>
지금의 나는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보다 두 살이나 더 많은 나이의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깨끗이 떨치지 못했다. 그때의 두려움은 때로 '불안'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덕분에 책이라는 친구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류시화 작가의 책제목 또한 딱 들어맞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엄마는 책을 왜 읽어요?
무서워서 읽었고
두려워서 읽었고
외로워서 읽었고
숨고 싶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
나는 끝내
소리 내어 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