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 공연을 보며 세기의 축구 경기가 떠올랐다

카운터테너 이동규 리사이틀 <바로크로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by 노랑망고

카운터테너, 여성의 고음 음역대를 소화하는 남성 성악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 이동규는 여성 소프라노뿐 아니라 남성의 저음부 베이스 음역까지 옥타브를 넘나 든다. 국내 1세대 카운터테너로 불리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개최할 만큼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그 두 번의 예당 리사이틀(드림퀼터, 바로그로그)부터 부천 살롱 콘서트(요즘, 클래식)까지 1년 간 세 번의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눈에 띄었다. 첫째는 무대 위 다채로운 표정과 몸짓이 심상치 않았는데, 토크하는 모습을 보니 그의 잔망기는 본투비였다는 것. 둘째는 그런 모습을 좋아하며 현장을 찾는 장년 관객이 꽤나 많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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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당 드림퀼터 커튼콜(좌측)과 부천 살롱 콘서트 포스터(우측)


이번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은 공연명 <바로그로그>에서 유추할 수 있듯 전곡을 바로크 음악으로 구성하였다. 바로크 시대 악기 테오르보와의 1부 협연 그리고 피아노와 더블베이스 편성의 2부로 나뉘어 서로 다른 조합을 비교 감상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얼마 전 상암에서 열린 축구 경기를 떠올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로비 포토존


클래식 공연을 볼 때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공연 1부엔 낯을 가리는(?) 경향이 있다. 평일 저녁, 고요한 콘서트홀에 도착하기까지 분주한 한나절을 보내다 보니 공연 감상 모드로 전환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날의 피로도나 주변에 앉은 관객 성향도 모드전환 소요시간에 영향을 주지만 무엇보다 음악 그 자체가 주요 요인이다. 다만, 무대 위 연주자와 선보일 음악들이 대부분 첫 만남이기에 얼마나 빨리 친밀감을 느끼느냐에 따라 내 마음이 금방 열리기도, 오래 걸리기도 한다.


고맙게도 1부의 보컬과 악기 모두 편안했으며 적절했다. 악기 앞에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1층 B구역 기준으로 확성이 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이질적인 소리는 없었다. 연주자 브루노 헬스트로퍼의 태도 또한 마음을 열고 공연을 즐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KakaoTalk_20251014_172239921_04.jpg 공연 1부 무대배치


첫 두 곡이 끝나고 이동규가 퇴장한 후 테오르보 연주곡으로 캅스베르거의 베르가마스카(Bergamasca)가 이어졌다. 바로크 시대악기의 깊은 울림을 선사하니 박수가 나왔고 처음에는 본인이 받더니 두 번째는 악기를 세로로 치켜들어 박수를 받게 하였다. 악기를 연주의 도구가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대한다는 느낌이랄까? 1부 마지막 곡 스트로치의 사랑에 빠진 헤라클레이토스(L’ Eraclito amoroso)에선 곡 말미를 잔잔하게 표현하더니 천천히 하수로 걸어 나가며 연주를 이어갔고 이동규가 뒤따라가며 마무리되었다. 퇴장까지 하나의 음악으로 선보인 인상적인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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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와 브루노 헬스트로퍼와의 커튼콜 장면


자연스레 2부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켜졌다.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 더블 베이시스트 성민제 두 협연자의 이름은 여러 차례 들어보았을 만큼 익숙했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만 각종 연주 영상으로 만난 이들이니 내적 친밀함은 보통 이상인 셈이었다.


KakaoTalk_20251014_172239921_06.jpg 공연 2부 무대배치


2부 첫 곡 퍼셀의 오페라 <요정의 여왕> 중 어느 매력적인 밤(One Charming Night from <The Fairy Queen>)은 피아노의 화려한 단독 질주로 시작되었다. 1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예고하는 전주였다. 뒤이어 화려한 재간의 더블베이스가 본인의 존재감을 알렸고 카운터테너의 보컬도 기교를 더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무대 위 세 사람이 푸른 피치 위 공격수로 보이기 시작했다. 탁월한 실력으로 유럽 톱리그에서 수십 개의 공격 포인트를 쌓으며 각자의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활동하는 스타플레이어 말이다. 매 경기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친 에이스들이 한 팀이 되었으니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승리를 즐길 일만 남았다. 거대한 스타디움 위에 선 공격수들의 화려한 플레이가 분위기를 달군다.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거세게 몰아치는데.. 어라? 무게중심이 점점 앞으로 쏠린다.


얼마 전 넥슨이 주최하는 <아이콘 매치> 축구 경기가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 은퇴한 전 세계 월드클래스 축구 선수들을 초청한 이벤트 매치였는데 흥미로운 건 각 팀을 공격수와 수비수만으로 꾸려 어떤 팀이 더 강한지 대결하는 것이었다. 해당 경기는 MBC에서 실시간 중계되어 일요일 저녁 수도권 시청률 4.0% 기록할 만큼 높은 화제성을 모았다.


11.PNG 네이버 뉴스 헤드라인 캡쳐본


수비팀(실드 유나이티드)이 안정적인 밸런스를 토대로 차근차근 상대 진영으로 전진하는 기조를 보였다면 공격팀(FC 스피어)은 공격에 몰두하다 수비가 후순위로 밀리곤 했다. 전진하여 골을 넣는 공격적인 성향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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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 주요선수 포스터 넥슨 홈페이지 출처


그럴 땐 개성 강한 스타 공격수들을 단숨에 휘어잡는 카리스마 감독이 필요하다. 2부 중반에 연주된 헨델의 오라토리오 <벨샤자르> 중 파괴적인 전쟁(Destructive War from <Belshazzar>)이 그런 느낌이었다. 헨델이 작곡가의 플랜을 분명히 주지 시키며 보컬과 피아노, 더블베이스의 역할을 명확히 지정하니 플레이어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플레이하는 인상을 받았다.


KakaoTalk_20251014_172239921_07.jpg 조윤성, 이동규, 성민제의 커튼콜 장면


축구는 공격수와 수비수가 각자의 역할 수행을 충실히 하는 게 우선이지만, 시시각각 펼쳐지는 상황 속에서 팀 전체가 하나 되어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번 공연의 1부와 2부가 내겐 수비팀과 공격팀의 모습으로 투영되었다고나 할까?


축구는 승패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예술은 그런 영역의 것이 아니다. 저마다의 감상이 있으며 감동의 포인트도 다를 것임이 분명하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펼치는 스타플레이어 이동규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의 다음 출전 경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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