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발레 FESTA> 롯데콘서트홀
그의 공연을 처음 보게 된 건 12월의 끝을 며칠 앞둔 2021년 어느 날이었다.
연말이면 아무래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연말이라는 이유로 들뜨기 마련인데, 개인적인 이유로 그렇지 못한 시간을 겪고 있었다. 공백기가 1년이 막 넘어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분위기에 휘둘려 괜히 조급해지고 싶지 않았다. 다만, 차분하게 연말을 기념하고 싶었다. 첼로의 안정적인 음역대를 감상하는 게 제격이라 생각이 들어 공연 하나를 예매하게 되었다.
첼리스트가 전면에 나서는 오케스트라 협연 공연이었고 나와 킴벨은 합창석에 앉았다. 첼리스트의 뒷모습을 보는 대신 지휘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리였는데 공연이 시작된 후 이 자리가 상석임을 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가곡, 클래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우리의 온 신경은 온통 지휘자에게 향해 있었다. 지휘자의 손끝과 발끝은 물론 눈코입과 온몸을 활용해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는 지휘자는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다.
※ 2021년 그 공연의 감상이 궁금하다면 첼로 공연 관람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참고하시라.
몇 년이 지난 후, 유퀴즈에 출연해 "춤추는 지휘자"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갖게 된 백윤학 지휘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명곡을 발레와 함께하는 기획이었고 나와 킴벨은 당연하게도 합창석을 예매했다.
‘글쎄, 아는 지브리 곡이 두세 개 정도 될까?’ 그렇다고 발레 공연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아닌 우리는, 순전히 지휘자를 보기 위함이었다. 합창석 앞줄에 앉으니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공연 내내 지휘자를 정면에서 바라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휘자 단상 위에 올라서 새초롬한 자세를 취하는 그의 모습에서 숨겨지지 않는 들뜸이 느껴졌다. 수백 번은 연주했을 음악일 텐데 그 음악이 신나고 행복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휘 본연의 역할에 소홀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흥은 유지하되 각 악기별 필요한 지시를 눈을 맞춰가며 정확한 타이밍에 전하고 있었다. 문득, 조직의 선두에 서서 행복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리더를 일터에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상상해 보게 되었다.
정말 행복해 보인다, 저 사람
정말 행복하다, 나도
4~5곡의 앙코르까지 마치고 공연장을 나서는데 킴벨이 포토존 앞에 길게 이어진 줄로 향했다. 백윤학 지휘자와 기념 촬영을 기다리는 줄이었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그냥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단다. 하면 좋지만 아니면 말고를 넘어선 응~ 나 할 거야!의 신남은 이성과 인내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귀한 손님이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지휘자에게 간단한 감사 인사를 건네었더니 어디서 오셨냐고 묻더라. 마포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도 가까이서 산다고 해서 나와 킴벨 모두 빵 터졌다. 이 모든 게 사진 촬영을 하는 중에 벌어진 대화였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로비로 넘어와 근 1시간의 팬서비스를 하고 있는 사람이 이토록 관객 한 명 한 명과 교감한다는 게 놀라웠다. 무대에서 보여준 기분 좋은 에너지가 이 짧은 대화에서도 이어진다는 게 감동이었다. 30초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와 사진 촬영을 마치고 다음 그룹을 맞이하는 그가 떠나는 우리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