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처럼 피아노 치기 9화
내게는 3개월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습관이 있다. 타임 트래커라는 플래너를 사용한 후부터 그렇게 되었는데 노트 하나가 3개월 분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연간 플래너는 너무 두껍고, 월간 플래너는 너무 얇아 가지고 다니며 작성하기에 아쉬움을 느꼈던 내게 만족감을 주었고 3년째 사용 중이다.
4/4분기(10월~12월)를 앞둔 9월 어느 날, 그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계획을 하나 세웠다. 3개월 간 전문가에게 새로운 스킬 배우기. 퇴사하며 생긴 평일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하고 싶었고 재미를 느끼면서도 결과물이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영상 편집을 배워볼까?
요리도 한번 배워야 하는데?
이 참에 테니스?
아니면 스페인어 공부를 해볼까?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걸 고민하는 이 시간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신났다. 관심 분야는 예전부터 다양했기에 이것저것 비교를 하던 어느 날 말끔한 청년 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박보검의 칸타빌레>에서 피아노를 치던 박보검이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레슨 선생님을 알아보았고 수업을 배우며 오늘날 브런치에 연재까지 하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shorts/tFq2CV3tbO0
언젠가 내가 박보검을 만나면 어떤 경로로 만나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두 번 정도 상상해 보았는데 그중 하나는 작년 상반기 즈음이었다.
2024년, TEO 채널(김태호 PD가 설립한 그 회사)에서 제작하고 JTBC에서 방영한 <My name is 가브리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를 모르는 장소에서 타인의 삶을 사는 게 컨셉인데 첫 주자로 나선 박보검은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램파츠라는 남성 합창단 지휘자 루리의 삶을 살게 된다. 본인의 직업은 물론 이름도 모르는 박보검이 단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루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갔고 3일 후 있을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에 멘붕 상태를 겪는다.
미리 알고 시켜도 부담스러운 일을, 프로그램 컨셉에 최대한 이입하여 루리가 되어 합창단 연습을 이끌고 음악적으로 더 나은 조언을 제시하여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모습에 몰입하며 시청한 기억이 있다. 보통 음악적 재능이 아닌 박보검의 모습에 킴벨과 나 모두 '박보검 왜 저것까지 잘해?'를 연신 외치며 봤었다.
배우 박보검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하모니엔 거장 음악가가 만드는 공연과는 다른 희열이 있었다. 어느 날 직장 동료와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내가 말했다. “아일랜드 램파츠 합창단을 한국으로 초청해 박보검과 콜라보 공연을 기획하면 어떨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4xrsncoD0Ts
올해 하반기에 그렸던 박보검 만나기 시나리오는 좀 더 실체가 있었다. 중고거래 플랫폼당근에서 박보검 플라워 클래스 당근 모임 멤버를 모집했다. 사연을 보내면 7명을 선정해 모임장 박보검과 플라워 클래스를 진행하는 이벤트였다.
웃음꽃 피는 모임 지원서
안녕하세요, 저는 모임장님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는 ____라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모임장 박보검 님처럼 되는 방법에 대해 매주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번 플라워 클래스에서 다양한 꽃의 종류와 조합을 배우고, 모임장님이 추천해 주시는 방식으로 아내에게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모임장님이 목에 리본만 달고 등장하셔도 제 아내는 활짝 웃겠지만, 제가 직접 만든 꽃으로 그 미소를 이끌어보고 싶습니다.
12월 중순이다.
그와의 만남은 아직 기획 단계이지만 덕분에 3개월 프로젝트 계획은 멋지게 달성했다. 더불어 사람을 만나며 가장 자주 받는 질문 하나에 선뜻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피아노를 칩니다, 박보검처럼 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