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갈라 <오은영의 오페라 상담소> 세종대극장
'오은영의 오페라 상담소? 이건 무슨 공연이지?' 공연 제목만 들었을 뿐인데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중파, 종편 할 것 없이 다양한 채널에서 멘토 역할을 하는 오은영 박사가 공연장 무대에서 나눌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나름 그려지는 그림은 있었다. '멘트와 공연을 번갈아가며 레퍼토리에 담긴 이야기를 상담자 관점에서 풀어가겠지?' 하지만 다 같은 당근을 쥐어줘도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다른 맛이 다른 것처럼, 연출과 구성에 따라 전형적인 이야기가 전혀 다른 체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공연명: 오페라 갈라 <오은영의 오페라 상담소>
일시장소: 2025.12.13.(토) 17시 세종대극장
기획의도: 그 시대를 살아간 작품 속 인물들의 생각과 다양한 선택, 그리고 그들의 내면의 마음을 이해해 보면서 마치 상담하듯이 관객들과 함께 떠나는 마음 여행. 음악과 상담이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한 해 동안 수고한 (관객) 자신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위로 선사
이번 공연엔 총 8명의 솔리스트가 출연했다. 솔로 또는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나면 오은영 박사가 등장했고 무대 한 편에 놓인 소파에 마주 앉아 상담을 했다. 프로그램 1부는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 2부는 연인 간의 관계를 주제로 구성되었다.
기억에 남는 1부 장면을 소개하자면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아버지(바리톤 강형규)와 딸(소프라노 한예원)의 이야기이다. 아버지 리골레토와 딸 질다의 서사가 담긴 세 곡을 부른 후 두 사람은 오은영 박사의 상담실에 찾아왔다. 첫사랑에 정신을 못 차리는 딸이 고민이라고 말하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집과 교회만 오가다가 이제 막 사랑을 처음 시작했는데 무작정 화만 내는 아버지가 고민이라는 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오은영 박사가 처방을 내린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면 자녀는 성장하면서 배워야 할 것을 못 배우게 돼요.
부모의 조언이 당장 좋은 결과는 내겠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내 것이 되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양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궁극적인 목표는 독립과 자립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독립과 자립적인 사람으로 클 수 있도록
옆에서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돕는 것입니다.
<문화의 날 특집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오페라 <리골레토> 이야기를 사례로 들었는데 흐름이 억지스럽지 않았다. 처방이 나오기까지 오은영 박사가 홀로 이야기를 끌어간 게 아니라 실제 상담처럼 아버지와 딸 역할의 연주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배역에 몰입한 나머지 대사를 치다 현웃이 터진 딸을 보며 되려 보기에 편안했다. 무대 위 한껏 몰입하고 정제된 그림에 익숙해졌다면 현실감이 느껴졌다랄까?
2부에선 도니제티의 오페라 <라보엠>의 로돌포(테너 진성원)와 미미(소프라노 박소영)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가난한 시인 로돌포는 오은영 박사를 찾아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가난합니다. 저 사람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네요”라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잠잠히 듣던 오은영 박사는 대극장 2층에 앉아 있던 나를 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행복은 어떤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드는 울컥함, 안쓰러움, 고마움.
이런 게 행복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 삶은 언제나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요.
예기치 못한 아픔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지요.
어쩌겠습니까? 종류가 다를 뿐 모두가 겪는 걸, 겪어가야죠.
다만, 그 속에서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것,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는 게 방법입니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나요?
오은영 박사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조언은 음악이 담고자 했던 메시지였고, 현실을 사는 우리를 향한 전문가적 진단과 처방이었다. 공연으로서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좋았거니와 오은영 박사의 전문성이 어우러진 연출에 적잖이 놀랐다.
사실 ㅇㅇㅇ의 브런치 콘서트, 살롱 음악회, 퇴근길 공연 등 인지도 있는 인물을 전면에 세우는 공연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부류의 공연은, 공연명 앞에 붙은 누구 씨를 얼마나 밀도 있게 개입시키느냐가 공연의 성패를 가른다고 생각한다. 누구 씨의 저명도가 높을수록 그 공연에 신경 쓸 여력은 적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누구 씨가 했을 법한 내용으로 대본을 구성하고 누구 씨는 그걸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오늘의 공연도 물론 그런 준비과정을 거쳤겠다만, 그렇다고만 하기엔 오은영 박사가 다룬 내용이 깊고 진했다. 연출진의 헌신적인 노력이었을까? 서울시 명예시장이라는 책임감에 더 유심히 살펴보았을까? 그녀를 이토록 개입시킨 동기가 궁금할 만큼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상담과 예술이 만나 메시지를 이해하는 폭이 깊어지고 긍정적인 힘을 북돋아주는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