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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망고 Mar 12. 2022

살바도르 달리와 늦은 점심 약속을 잡다

<Imagination and Reality> 동대문DDP 디자인 전시관

오랜만에 동대문에 왔다.


"언제 볼까요?"


몇 주간 진심 반, 인사치레 반으로 오고 가다 드디어 날을 잡은 것이다. 사실 약속 날짜는 잡은 건 나지만, 만남을 주선한 건 상대방이었다. 친분은 물론 안면도 없는 스페인 사람이었지만 만남을 결심한 건 그가 보낸
초대장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낯선 이와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엔 소화도 안될 터, 늦은 점심으로 약속 시간을 잡았다.


올리브 영 씨로부터 온 초대장. 이 사람은 미국 국적인 듯?


그러고 보니 이곳 동대문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학창 시절을 같이 보냈던 필리핀 친구의 한국 방문 때도,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칠레 선생님과 과외를 한 장소도 동대문 DDP 근방이었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건축물의 신선함을 자랑하고 싶은 자국인의 자부심에 이방인들을 이곳으로 불렀었나 보다.


입장 대기 등록 부스를 보고 이 사람의 유명세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만나기로 한 이 사람, 알고 보니 유명 인사다. 평일 오후인데도 그를 만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커플 손님들이 유난히 많았다. 나도 킴벨과 왔으니 그 무리들 중 하나다.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우리 차례를 알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는 말했고 우리는 들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야기로 시작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 파블로 피카소와의 만남, 아내 갈라로부터의 영감, 그리고 사후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어투와 단호한 표정이 거슬렸다. 그랬던 내가 그의 화려한 인생 스토리와 작품을 마주하며 내적 탄성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유달리 유난한 그의 콧수염이 달라 보였다.


그가 대화 중 언급한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얼굴을 가구 인테리어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킴벨과 오늘의 감흥을 나누었다. 나와는 달리, 킴벨은 정반대의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와 아이컨택을 멈추지 않으며 연신 고갯짓으로 호응했던 그녀였기에 나와 비슷한 걸 느끼는 줄 알았다.


“자신감과 소신으로 둘러싸인 것 같지만 속은 매우 여린 사람 같아. 어느 때는 무언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여”


“너무 많은 게 보이고, 너무 많은 게 느껴지는 사람 같아. 그 그림 보며 그 사람이 한 말 생각나지?” 


그는 밀레의 <만종>을 가리키며 감자가 담긴 바구니에서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보인다고 말했다.


밀레의 <만종>


동일한 그림을 보고 박수근 화백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농촌부부가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경외감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평화로운 마음이 느껴졌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랬어. 자기 안에 생각이 많으니 차분히 들어준다면 잠시라도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거든” 


배려 깊은 킴벨의 남편이어서 마음속 감사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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