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스머프
“세상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엉…엉…”
케이티는 왜 우냐는 말에 옷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마을에 들어올 때면 트레일 엔젤의 집에서 머무를 기회가 많았다. 어느 마을은 여러 명의 하이커가 한 집에서 머무르기도 했고, 어느 마을은 트레일 엔젤들이 많아 하이커들이 분산되어 머무르기도 했다. 빅베어 시티에는 트레일 엔젤들이 많지 않아 파파 스머프의 집이 하이커 엔젤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빅베어 시티에 도착했을 때 미리 알아 놓은 파파 스머프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파파 스머프 핸드폰 맞나요?”
“네. 맞아요. 제 남편이에요. 어디에요?”
“빅베어 레이크 근처에 있는 모텔이에요.”
“잠시만 기다려요. 하이커 한 명 태우러 가는 길인데 태워서 그리로 갈게요.”
할머니와 오랜 시간 세월을 보낸 듯한 낡은 차 한대가 우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어서 타요.”
배가 볼록하게 나와 덩치 좋은 할머니는 능숙하게 우리를 맞이하고 태워서 할머니의 집으로 데려갔다. 작은 마당 앞에 쳐진 커다란 군용 텐트 안에는 해변에서 쓰는 의자들이 10개가량 깔려 있었다. 사람은 없었지만 의자 위에 몇개의 침낭이 놓여있었다.
“짐은 안에 놓고, 세탁실도 샤워실도 있으니깐 편하게 써요.”
집 안으로 들어가자 집 안 곳곳에 하이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상치 못한 인원에 놀라 주변을 훑으면서 인사를 던지고는 한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은진이와 차례대로 샤워를 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짐을 싸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트레일로 복귀를 했고, 누군가는 잠자리가 불편해 하루는 편한 곳에서 자고 싶다며 호텔로 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빠지고 나니 은진이와 나 그리고 케이티 3명만이 남게 되었다. 파파 스머프와 아내 할머니는 계속 바빴다. 두 분은 피자 배달을 하시는데 하루는 할아버지가 근무하시고, 하루는 할머니가 근무를 하셨다. 그리고 쉬는 날에는 또 하이커를 트레일 헤드까지 태워주거나 트레일 헤드에서 하이커를 데리고 와 마을까지 태워주거나 집에 데려와 잠자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씻는 사이 나갔던 할머니는 또 다른 하이커를 태워왔다. 새로 온 하이커는 목발을 짚은 채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케이티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안녕하세요. 전 톰이에요. 이틀 전에 45km를 걸은 후에 10km만 더 걸으면 마을에 들어올 수 있어서 무리를 했어요. 그 때부터 발가락에 이상이 느껴졌는데 병원을 갔더니 엄지발가락에 금이 갔다고 하네요. 낫는데 한달은 걸리고 낫고 나서도 계속 걸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네요. 아직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PCT에서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걸을 수 없을 만큼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었다. 짧게는 4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었기에 학생이 아니라 직장인이라면 보통은 회사를 그만두고서 와야 했고, PCT에 도전하는 것은 일상의 연속성과는 거리가 있는 삶의 큰 부분과 맞 바꾸어야 하는 일이었다. 매일 30km 이상을 걸어 하루 종일 몸을 써야했기에 몸이 아프면 나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톰이라는 사내는 한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조금 앉아 있더니 목발을 내려놓고 절뚝이며 걸래를 찾아 빨기 시작했다.
‘아니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오자마자 청소를 하고 그래.’
“그냥 둬요. 우리가 청소 할게요.”
케이티가 내 속에 있는 말은 꺼내 주었다.
“아니에요. 어제 푹 쉬어서 청소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아마 할머니 댁에서 오래 신세를 져야할 거 같은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
우리도 그를 따라 청소 도구를 하나씩 들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하루에도 산 속에서 일주일씩 머물러 온 몸에 먼지 가득한 하이커들이 수 없이 드나들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서 집안 청결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안에는 먼지 가득했고, 마당에는 쓰레기며 솔잎들이 무수히 쌓여있었다. 톰은 바닥을 쓸고 닦았고 나는 바깥의 솔잎과 쓰레기를 정리하고 널부러진 하이커 박스를 정리했다. 은진이와 케이티는 각자 부엌과 화장실 청소를 했다.
“저녁은 제가 타코 만들어 줄게요.”
화장실 청소를 끝낸 케이티가 말했다.
“좋죠. 타코는 한번도 안 먹어봤는데.”
“그래요? 장 봐올 테니깐 조금만 기다려요.”
케이티가 장을 보러 간 사이 우리는 모두 청소를 마쳤다. 지저분한 집이 깔끔해지자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조금이나마 보답을 한 것 같아 톰에게 고맙게 느껴졌다.
“다 됐어요. 와서 어서 먹어요.”
장을 봐서 부엌에 들어간 케이티는 얼마지 않아 다되었노라며 우리를 불렀다. 상추, 토마토, 치즈, 소고기 볶음, 양파 모두 잘게 썰려 넣고 싶은 만큼 넣어 소스를 뿌리고 또띠아로 싸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와 진짜 맛있어요.”
배가 고팠던지라 쌈 가득 재료를 넣고 한입 베어 물자 또띠야의 밀가루부터 시작해 토마토의 상큼함, 치즈의 고소함, 양파의 아삭함, 소고기의 육즙까지 재료가 가진 각기의 향과 맛, 그리고 씹을수록 뒤섞이는 재료의 향연이 입안 가득 퍼졌다. 결국 커다란 쌈을 5개나 싸 먹고서야 끝이 났다.
“할머니, 트레일 엔젤 하시려면 참 힘들 거 같은데 왜 하시는 거에요?”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TV를 보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나랑 할아버지는 그냥 사랑들을 돕는 것이 좋아. 다른 이유는 없고 그게 다야.”
사람이 추악하면 똥보다도 더럽지만 아름다울 땐 꽃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아름답게 핀 꽃 두송이가 빅베어 시티를 지키고 있었다. 이타적 이기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동기는 나의 기쁨을 위한 일이지만 그것이 타인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 타인을 돕는 일은 세상이 더욱 인간미로 가득차게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짧은 이틀이었지만 어느새 정이 든 집을 떠나 다시 트레일로 가야했다. 할아버지는 케이티와 우리를 태워 트레일 헤드로 복귀 시켜주었다.
“할아버지 정말 고마웠어요.”
“그래. 무사히 꼭 캐나다 까지 닿기를 바랄게.”
할아버지와 포옹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섰다. 자신의 몸보다도 훨씬 큰 배낭을 메고 다니던 케이티는 발을 절뚝이며 걸었다. 비행기 삯이 없어 캐나다까지 걸어 가냐고 장난을 걸었는데 그 이후로 케이티를 볼 수 없었다. 그녀가 무사히 집까지 걸어갔기를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