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사막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강력한 물줄기였다. 강이 흐른다는 말에 전날 물을 다 먹어 치웠는데 아침부터 목이 말라오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나올 때가 지났는데 불안감이 고조가 될 쯤 언덕을 하나 넘어가자 거짓말처럼 사막 한 가운데 커다란 강줄기가 흘렀다.
“야호~~~!”
배낭을 내려놓고 발도 씻고 세수도 하고 양치도 했다. PCT를 시작하고 사막에서 물이 없다는 핑계로 양치를 3~4일씩은 하지 않아 양치를 할 때마다 스켈링을 한 것 마냥 게운했다.
물줄기 바로 옆을 따라 계속 길이 이어졌다. 맑은 물이 길 바로 옆에 흐르자 늘 물 걱정을 안고 다니던 부담감을 내려 놓아 더 없이 좋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물줄기가 점심을 넘어서까지 계속 이어져 행복감도 함께 이어졌다.
“진아 우리 여기서 점심 먹을까?”
“좋지.”
은진이와 조금 더 걸어 목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매트를 깔았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물 안에 발을 담그자 그간 쌓였던 피로가 녹는 기분이 들었다.
“진아 니도 얼른 발 담궈 봐라. 죽인다 진짜.”
“응 잠시만.”
은진이도 이내 발을 담그더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루 종일 걷다 보니 에너지 소모량이 많았는데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점심은 그간 계속 초코바 2개로만 떼웠다. 다른 하이커들은 감자 분말과 견과류와 참치, 잼, 초코 시럽을 넣어서 또띠야로 쌈을 싸서 많이들 먹곤했다. 전날 하이커 박스에서 다른 하이커가 두고 간 감자 분말이 있어 챙겨온 걸 꺼냈다.
“진아 감자 분말 한번 해먹어 보자.”
“응. 그거 물만 타면 되는 거 아니가?”
“맞다. 잠시만.”
배낭에서 코펠을 꺼내 감자 분말을 풀고 흐르는 물이라 정수없이 물을 담았다. 뜯을 때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물을 풀자 금세 코펠은 감자 샐러드로 가득 찼다.
“와 진아 대박 맛있겠다.”
아침은 먹지 않고 다니기에 오전 내내 걸어 텅텅 빈 배에 감자 샐러드가 들어가니 소고기 부럽지 않았다. 감자의 달달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천국이 따로 없네요. 맛있게 드세요.”
밥을 먹는 사이 다른 하이커들이 부러운 듯 쳐다보며 지났다. 밥을 먹고 그늘 아래 쉬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져 그대로 매트에 누워 잠이 들어버렸다. 너무 달콤해 다시는 깨기 싫은 낮잠이었다.
“오빠, 이제 가야지.”
“응?”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다시 한번 은지니가 흔들어 깨웠다. 정신을 차려 가기 싫은 몸을 일으켜 떠날 준비를 마쳤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에 부러움을 던지고 간 하이커들도 달콤한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진아, 오늘 오두막 같은 곳 지나던데 지도 봤나?”
“응. 정상 부근에 있더라.”
“괜찮으면 텐트도 안쳐도 되는데 거기서 잘까?”
“그래. 그러자.”
나무 그늘 없는 땡볕 아래의 사막을 걷는 일도 이제 어느새 적응이 되어 크게 힘듦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가 보았다. 몇개의 사막산을 넘어서 세상이 붉게 변해갈 즈음에 오두막에 도착했다.
“진아, 저기 사람들 엄청 많네.”
“뭐지? 오빠 파티 하나보다.”
안쪽을 보니 캠핑장비들이 가득했고 테이블 위에도 음식이 가득했다. 그리고 오프로드 차들이 그 뒤로 5대가 있었다.
“진아 저거 보이나?”
“와… 음식 엄청 많네.”
“우리도 좀 줬으면 좋겠네.”
“응.”
말하고 나니 맛있는 냄새가 더 풍겨 오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쪽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먼저 용기를 내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혹시 음식 조금만 나눠 주실 수 있어요?”
“잠시만요. 남아 있는게 있는지 확인 좀 해볼게요.”
아주머니는 덮어 놓은 냄비를 확인하고서는 얼마 남지 않았다며 스파게티와 미트볼을 담아 주었다. 진하게 베인 고기 향만으로도 매일 라면으로 저녁을 먹는 우리에겐 진수성찬이었다.
“아니 이 사람아. 맥주를 줘야지.”
아저씨 한 분이 우리의 마음을 읽고서는 아이스박스를 열어 맥주를 건내 주었다.
“고맙습니다.”
“여기 앉아서 먹어요.”
점심 이후로 4시간을 넘게 먹지 않고 걸었던터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PCT 하는건가요?”
“네. 맞아요.” “얼마나 걸었어요?”
“이제 한 3주 정도된 거 같아요.”
“멕시코 국경부터요?”
“네.”
“와.. 3주를 걷기만 한다고요? 대단하네요.”
“네. 하다 보니 시간이 잘 가더라구요. 여기는 어떤 모임이에요?”
“우리는 미국을 사랑하는 0.3% 모임이에요.”
그러고보니 오두막에 ‘트럼프, 다시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것도 좀 먹어요.”
대화를 나누며 친해지니 음식이 마구 꺼내주기 시작했다. 견과류에 초콜렛까지 배부르게 먹으며 그들의 생각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트럼프를 지지하면 인종 차별적이거나 백인 우월주의적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따뜻하고 겸손했다. 내 편견이 오히려 이성적이지 못했다.
“정말 잘 먹었어요. 이제 다시 가봐야겠어요.”
“가기 전에 같이 사진 한번 찍어요.”
그들은 중지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손가락 3개는 펴고 엄지와 검지는 둥글게 만들어 손등을 앞으로 보인 뒤 0.3%의 포즈라며 따라해보라고 했다. 유치한 것 같았는데 찍은 사진을 보니 다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조금 더 걸어 정상에 올라 잠자리를 구했지만 행복한 시간임은 틀림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