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이가 아닌 동행자
'No reliable water for 40miles'
60km동안 안정적인 물 공급원이 없다고 했다. 물 없을 긴 사막의 길을 앞두고 마지막 물 포인트에서 가진 물통에 물을 다 채웠다. 사막에서는 정말로 귀한 정수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맑은 물이 세차게 흘러내렸다. 드디어 스캇이 말했던 사막의 절정 구간이 시작되었다.
"나는 오늘 밤에 출발 할거야."
"나는 새벽 일찍 출발 할거야."
하이커들은 60km의 긴 거리 동안 물 없는 이 구간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해를 피해 각자의 방식으로 걷기로 했다. 사막에서의 기말고사였다.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가야겠다. 마지막 고비다. 이것만 이겨내면 사막도 끝이다.’
세개의 알람을 5분 간격으로 맞춰놓고 머리 속으로 주문을 되뇌이고 이른 잠을 청했다. 텐트 안으로 드는 밝은 햇살에 눈을 떴다.
'아.....'
눈을 뜨자마자 시간이 꽤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자주 깨던 잠도 알람까지 맞췄는데 못 듣고 숙면을 취해버렸다. 텐트 문을 열고 나서니 어제 뻭뻭하게 차 있던 텐트들은 눈 앞에 하나도 보이지 않고 황량한 흙바닥만이 보였다.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의 문제였지만 먼저 떠난 하이커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낮잠을 다시 자고 이글 거리는 태양을 피해 저녁에 출발하는 나이트 워킹도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갈증에 허덕이더라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밤에 걷는 것보다 그래도 풍경을 보며 걷는 낮이 더 좋았다.
'어떻게 되더라도 일단 물을 많이 마시고 가자.'
출발 전 배 안 가득 물을 채웠다. 그리고 어제 채워놓은 물통을 배낭에 넣어 6kg의 무게를 더했다.
'오전 9시'
이미 해는 높이 솟아 올라있었다. 한동안 그늘이 이어져 다행이라 생각하며 걸었는데 산 허리를 하나 지나고 나니 앞은 온통 듬성듬성 낮은 초목만이 있는 사막 산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죽었구나.'
10km, 35km 지점 두 곳에 워터캐쉬가 있다는 정보를 Guthook app으로 확인 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캐쉬는 캐쉬일 뿐이라 의존할 수는 없었다.
"다행이다."
10km 지점에 도착하니 물통에 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늘 아래 숨어있던 물통의 물이었지만 물통을 잡는 순간 미지근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아껴 마셨던 1L를 채우고 다시 넣을 수 있을만큼 최대한 배 안에 물을 채웠다. 6월 말, 이제는 사막의 낮에는 극한의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의 끝에 아지랑이들에 피어 올랐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에 눈이 따가웠다. 이미 축축해진 소매로 눈가를 닦아 내었다.
‘안녕하세요.’
커다란 선인장 나무인 조슈아 나무 밑 그늘에 해를 피해 숨어있는 하이커들에게 눈 인사를 했다.
'저 사람들도 출발한지 얼마 안됐나?'
그들처럼 온기의 절정을 피해 따라 쉬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걸어놓는 게 유리할 것 같았다. 가는 길에는 어제 밤에 본 많은 하이커들이 나무 밑에서 쉬거나 외부 텐트로 그늘을 만들어 쉬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누군가가 자갈로 만들어 놓은 1,000km 표식을 지났다. 자연스레 3,300km의 남은 거리가 머리 속으로 계산되었다. 언제나 걸어온 거리보다 남은 거리 계산이 앞섰다.
'도저히 안되겠다. 일단 쉬자.'
오후 3시가 되어 워터캐쉬가 있다는 35km 지점 5km 앞선 곳에서 방전이 되었다. 남은 물은 이제 1L,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0.5L가 남았다. 5km를 걷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이었다.
'모르겠다. 일단 자자.'
불어오는 모래 바람조차 온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저 멀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잠이 들었다. 그대로 계속 자고 싶었다.
"형."
오랜만에 들리는 한국말에 희미하게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지훈이가 있었다. 꿈을 꾸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니 지훈이가 맞았다.
"지훈아 니가 왜 여기에 있는데?"
지훈이는 삼총사와 같이 하이커 타운에서 처음 만났다. 삼총사는 한국인 대학생 친구 3명으로 한국에서부터 같이 왔고 지훈이와는 PCT를 하며 만나 같이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보다 3주 늦게 시작해서 800km만에 우리를 따라 잡았다. 그렇게 하루 잠시 만난 후 우릴 앞질러 갔으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아했다.
"테하차피에서 설사병 나는 바람에 며칠 쉬느라 애들은 먼저 가고 전 좀 늦어졌어요."
나도 혼자 걷는 이유를 이야기 해 주었다.
"형 그러면 케네디 메도우까지 같이 걸으실래요?"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지훈이가 먼저 제안해주어 고마웠다. 처음으로 은진이가 아닌 다른 동행이 생겼다.
"형 먼저 가실래요? 전 조금만 더 쉬다가 갈게요."
"그래. 그러면 워터캐쉬 있다는데서 만나자."
"네 있다가 봐요."
남은 0.5L의 물을 다 마시고 남은 5km를 버틸 생각으로 입 안에 부어 넣고 길을 나섰다. 오후 6시, 해는 조금씩 기운이 빠져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지만 하루 종일 태양빛을 받은 모래가 내뿜는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하..아, 하..아."
입 안이 마르지 않게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야속한 오르막은 자꾸만 입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한 노하우로 수건으로 입을 막아보았지만 이미 땀이 다 말라버린 건조한 수건으로 오히려 더 힘들었다.
'안되겠다.'
채 1km를 걷지 못하고 금새 찾아온 갈증에 더이상 걸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앞쪽을 바라보니 하이커가 보였다. 그를 목표 삼아 걸었다. 마침내 그의 옆에 도착하고서는 그의 얼굴이 아닌 배낭 옆에 끼워진 물통을 바라보았다. '어떻하지..'그의 물통도 비어있었다. 인사를 할 힘도 없어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배낭을 벗어 등받이로 삼았다. 뒤를 보니 지훈이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조금 어지럽기도 무기력하기도 했다.
"형."
지훈이가 부르는 소리에 깼다. 아주 긴 잠을 잔 것 같았는데 채 5분을 자지 못한 것이었다. 지훈이가 올라오고 있는걸 봤는데 나도 모르는 새 스르르 감긴 눈에 잠이 들어버렸었다.
"지훈아 혹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훈이가 말했다.
"형, 저 물 있으니깐 드세요. 아까 물통 빈 거 봤어요."
‘이 자식…’
지훈이의 물통에는 1L가 조금 안되게 물이 가득 있었다. 이 곳에선 되도록이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해야했다. 독립성과 독립성은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지만 의존은 서로의 살을 파먹는 것과 같았다.
"고맙다.”
염치없고 미안했다. 지훈이의 물을 반을 받아 또 겁없이 벌컥벌컥 마셨다.
"오늘 물 얼마나 가지고 출발했는데?"
"저요? 2L 정도요."
난 7L는 마신 것 같았는데 믿기지 않았다.
"워터 캐쉬 말고 마지막 물 포인트에서?"
"네. 전 평소에도 물을 많이 안 마셔서 사막 동안 계속 물 많이 안 가지고 다녔어요."
"와 대단하네."
몸에 수분이 들어가고 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이제 남은 4km는 어떻게든 물 없이 걸어 가야했다. 사막에서 첫 물 고비 때 큰 도움을 준 존과 새라의 생각이 났다.
'남매는 벌써 시에라를 걷고 있겠지? 여기만 지나면 이제 고비는 정말 끝이다. 힘내자.'
"지훈아, 먼저 출발할게."
더 쉬면 걷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한 팔을 배낭 어깨 끈에 집어 넣고 배낭을 허벅지에 올린 뒤 나머지 반대편 팔도 나머지 어깨끈에 넣었다.
“으라차차!”
마지막으로 허벅지 반동을 이용해서 배낭을 둘러 메어 출발 준비를 마쳤다. 1km를 걸으며 흘린 땀으로 젖은 수건을 입안에 물었다. 긴급 수혈은 됐지만 갈증은 여전했고 몸에 수분이 부족했다. 분명 한참을 걸은 것 같았는데 겨우 200m를 걸어왔다. 10번을 넘게 중간 중간 남은 거리를 확인하고서야 마지막 500m를 앞두고 있었다. 저 멀리 사람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긴 했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짠내 가득했지만 수건을 입에 물고 걸은 덕분에 입안이 마르지 않고 잘 올 수 있었다.
'마지막 500m.'
벗어나려 해도 제자리 걸음을 하는 런닝 머신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 멀리 사람들의 모습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물이 가득한 수십 개의 정수기 통을 볼 수 있었다.
'살았다. 드디어 끝났다.'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단내가 풍겨져왔다.
“고생 많았어. 어서 물 마셔!”
먼저 와 있던 하이커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입 안으로 물을 쏟아부어 목을 실컷 적시자 이내 지훈이도 도착했다. 드디어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기나긴 사막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