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outh California - 19화

두번째 단독 하이킹

by 빵호빵호


“오빠 발목이 안 좋아서 걷기가 힘들 거 같은데...”

출발 날 아침 은진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정말 발목이 아파서 그런지 말을 꺼내기 미안해서 그런지 정확한 마음은 알 수 없었지만 조금은 쉬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아, 그러면 Rea 할머니한데 혹시 일주일 정도 있어도 되냐고 물어볼테니까, 된다고 하시면 케네디 메도우에서 만날까?"

은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을 나가보니 할머니는 TV를 보고 계셨다.

"할머니 진이 발목이 안좋아서 걷기다 힘들 것 같다고 하는데 저는 오늘 출발하고 진은 여기서 혹시 일주일 더 머물러도 될까요?"

할머니는 잠시 고민했다.

"음 좋아. 나도 외로운 참이었으니깐, 일주일 뒤에 진은 내가 케네디 메도우까지는 태워줄께. 대신에 차비만 좀 주면 될 것 같구나."

천만다행이었다. 혼자서 모텔에 지내도 마음에 걸렸고, 일주일을 같이 쉬고 가려니 걸음이 느린터라 마음이 불안했다.

"진아, 할머니가 괜찮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지내도 괜찮겠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은진이와와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할머니와의 일주일간의 동거도 걱정도 됐지만 둘의 조합이 재미있을 것도 같았다.

"응. 바디 랭귀지가 있잖아."

은진이의 대답에 마음에 조금 놓였다.

"참 그리고 할머니가 케네디 메도우까지 태워준다고 하시니까. 태워 주시면 차비 꼭 드리고."

"와 대박이네. 응 오빠도 조심히 다니고 일주일 뒤에 보자."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가벼운 마음으로 배낭을 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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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헤드까지는 할머니가 태워줘 할머니와 포옹을 나누고 사막의 마지막 구간을 시작했다. 테하차피는 인디언들이 바람의 언덕이라 부른 곳으로 실제로 바람이 강해 풍력 발전소가 크게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만드는 전기를 LA에 판매한다고 했다. 래 할머니도 풍력발전소에서 근무를 하다가 퇴직하시고 정원을 가꾸고 도자기를 만들며 노후를 보내고 계셨다. 강력한 바람이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는데 저항을 더했다. 오르막의 끝에 서자 긴 평지 길이 앞선 고생을 보상해주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마주치는 사람없이 혼자서 걸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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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몇 시간을 혼자 걷고 쉬다가 처음으로 하이커 두 명을 만났다. 그들이 쉬고 있는 그늘 옆으로 숨어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전 주디스라고 해요. 남자친구는 폴이에요."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하이커 중 여자가 인사를 받아주었다.

"저도 여자친구랑 PCT중인데 발목이 안좋아서 테하차피에서 일주일 쉬고 케네디 메도우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은진이와 나도 연인이 PCT를 하고 있지는 것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은진이와 떨어져 다른 연인이 PCT를 하는 모습을 보니 예뻐 보이기도 또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PCT를 하다가 만났어요. 전 독일에서 왔는데 첨에는 심심해서 그냥 같이 다녔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네요."

주디스가 이야기했다. PCT를 하면서 커플들도 많이 생긴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체적으로 고통을 같이 이겨내는 사이에는 끈끈함이 싹트는 법이었다.

"두 사람 보기 좋아요. 많이 싸우지는 않아요?"

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엄청 싸우죠. 그런 날은 따로 걷고 심지어는 잠도 서로 어디서 잔지 모르죠. 그렇게 며칠 서로 어디서 걷는지도 모르다가 만나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 사이 좋게 걷죠."

한국에서 다툰 일이 기억에 전혀 없을 정도로 은진이와는 잘 지냈는데 PCT에서는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바닥을 자주 보이며 다퉜다. 그럼에도 잠은 항상 같이 잤는데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고보니 이 길 위에 은진이가 없다는 사실이 쓸쓸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홀가분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근데 보통 싸우면 큰 이유가 없지 않아요?”

“그렇죠. 그냥 사람이 다른거죠.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내 생각과 내 생활 방식과 다르다고 감정을 내세우니 싸움이 되죠. 다 아는데 안되는 거죠.”

둘은 서로를 응시하더니 입술을 맞대었다. PCT 위의 연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남들도 우리와 비슷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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