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집
달의 집이라고 불리는 Casa de Luna는 이틀 전 쉬었던 하이커 헤븐과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하이커 헤븐은 체계가 잘 갖춰진 프렌차이즈 가게 같은 느낌이었다면 까사 데 루나는 자신의 색이 가득 담긴 하나뿐인 가게 같았다.
“진아, 어떻하지? 갈까 말까?”
“오빠 마음대로 해.”
이틀 전 이미 제로데이를 가진터라 그냥 지나칠까 생각도 했지만 하이커들에게 워낙 평이 좋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웠다.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음… 그러면 우리 가서 낮에 쉬고 나이트 워킹 한번 해볼까?”
“그래. 그러자.”
어제 마지막 물 포인트에서 물을 뜨고 밥을 해먹고 아침에 좀 마셨더니 까사 데 루나까지 10km를 걸어야 했는데 1L 물통에 반이 채 되지 않는 물 밖에 없었다.
‘이제는 뭐…’
마음의 부담이 없었다. 어느새 한달이 넘는 시간을 사막에서 지내다 보니 초반에 물의 고비 만났을 때와는 달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조금 걷기 시작하자 땀에 금새 수건은 젖었다. 입 안에 물을 조금 부어주고 땀에 젖은 수건을 머리에 얹고 모자를 쓴 뒤 수건을 입으로 살짝 물었다.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보니 까사 데 루나를 가는 도로까지 남은 거리는 5km였고 물은 이미 다 떨어졌다. 입 안이 건조해지는게 가장 걱정이었기에 입을 지그시 다물고 조금씩 수건의 땀을 빨았다.
‘언제 나오는 거야?’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물 없는 5km가 쉽지만은 않았다. 물이 넉넉하게 있을 때 휴대폰을 보면 생각보다 많이 걸었네? 했지만 물이 없을 때는 왜 이렇게 조금 밖에 못 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참 재미있었다.
‘하… 살았다.’
시야에 멀지 않은 곳에 드디어 도로가 보였다. 마지막 힘을 짜내 도로에 닿으니 도로 가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물이 있었고 수도꼭지도 보였다.
“치익”
수도꼭지를 돌리자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졌다. 하이커 헤븐에 보내 놓았던 소포에서 챙겨온 포카리스웨트 분말을 물통에 그대로 부어 원샷으로 1L를 들이켰다. 은진이도 곧 뒤따라 나의 행동을 보지도 않았는데 나와 꼭 같이 굴었다.
동네의 다른 조용한 집들과는 달리 집 앞의 커다란 파라솔과 테이블에 하이커들이 모여서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낭을 내려 놓고 우리도 아이스 박스에서 탄산 한 캔을 꺼내 마셨다.
“아저씨가 왜 여기 있어요?”
3주 전 쯤 산 중의 트레일 엔젤, 마이크의 집에서 보았던 스캇 아저씨였다.
“하하. 마이크 집에서 한달 지내다가 이제 여기로 옮겼지.”
아저씨는 PCT 경력만 해도 10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시즌이 되면 이렇게 시기마다 트레일 엔젤들의 집을 옮기면서 엔젤들을 도와준다고 했다.
“지금부터가 사막 중에서도 가장 힘든 구간 일거야. 물이 잘 없거든. 그래서 물을 많이 들고 다녀야 하고 그늘도 거의 없어. 그래도 그 동안 단련됐으니 큰 문제는 없을거야. 마지막 구간 잘 버티고 나면 시에라니깐 힘내.”
“시에라는 어때요?”
“최고지. 무엇보다 어디서든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거든. 그래서 물을 1L이상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 근데 처음엔 완만했던 사막과는 완전 다를거야. 큰 바위를 계속 올라야 하니까. 사막에 적응했듯 시에라에도 금새 적응 할거야. 천상의 시에라지.”
모두가 시에라는 ‘The Best’라며 짧고 강렬한 평을 남겨 점점 시에라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커졌다. 집 뒤에는 커다란 마당이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숲에 텐트 사이트가 마련되어 있어 텐트를 치고 쉴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 매트를 깔고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청했다.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포근했다.
“땡땡땡땡”
저녁이 되자 까사 데 루나의 안주인 테리 아주머니는 종을 울려 식사 시간임을 알려 주었다. 30명 정도 되는 하이커가 일렬로 서서 나초와 갖가지 반찬들을 먹기 위해 일렬로 줄을 서서 또 다른 장관을 연출했다.
“저녁 먹고 댄스 파티가 있을 거에요. PCT 지도가 그려진 손수건 받으려면 나와서 꼭 춤을 춰야 해요!”
그녀는 올해의 2018년 PCT 손수건은 주황색이라며 흔들어 보였다.
“돕 뚜뚜두 뚜뚜두 뚜둡, 뚜두두 뚜두두 뚜뚭, This hit, That ice cold, Michelle Pfeiffer, White Gold!”
Uptown Funk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려 퍼지자 동시에 하이커 한명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손수건을 받아갔다. 그리고 차례대로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오는 걸 꺼려하기 시작할 때쯤 나도 나가서 한바탕 춤을 춘 뒤에 손수건을 받아왔다.
“진아. 니도 다녀온나. 괜찮다.”
“아니. 그냥 안 받을래.”
“으이구 자.”
아닌 것 같은데도 부끄럼이 많은 은진이를 대신해 한번 더 춤을 추고 왔 다. 어느새 기부함에도 하이커들의 마음이 가득 찼다.
저녁을 먹고 조금 더 쉬다가 나이트 워킹을 할 하이커들이 한 무리 먼저 출발했다. 모두 다 떠내 보낸 뒤 우리도 길을 나섰다. 내가 앞장을 서 걸었다. 은진이와 간격을 유지하며 걸으려고 했지만 잘 오고 있는가 싶어 뒤돌아 보면 저 만큼이나 뒤에 있었다.
“오빠 우리 그냥 자고 내일 걸으면 안될까?”
“그래. 그러자.”
밤에 걸으니 목이 마르지 않은 점은 좋았다. 낮에 보이지 않던 꼬리가 긴 쥐도 보였다. 하지만 아무런 경치도 볼 수 없었고 3초에 한번씩 보이던 도마뱀들도 자취를 감췄다. 땡볕 아래 걸어야 했지만 낮의 사막이 더 좋았다. 얼마지 않아 먼저 출발했던 사람들 중 텐트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도 우리처럼 낮에 걷는게 좋은 모양이었다. 밤 하늘에 수 놓인 은하수와 별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