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도둑
“Freeze!”
꼼짝 마! 미국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나는 범죄자가 되었고, 총을 겨눈 사내는 경찰이 되었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PCT 하이커에요. 다리를 다쳤는데 도움을 좀 받으려고 들어왔는데 개가 무섭게 달려 들어 숨어 있었어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그저 이 순간만이 빨리 해결되길 바랬다. 그는 재빠르게 눈동자를 굴려 우리의 차림을 확인했다. 총집에 총이 다시 들어가고 나자 강한 긴장감과 함께 다리가 풀렸다.
‘아차.’
고개를 돌려 뒤에 있던 은진이의 얼굴을 보니 큰 눈가에 눈물 방울이 맺혀 있었다.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걷기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 더 이상 발 뒤꿈치의 쓰라림을 이겨내지 못해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물집이 터져 나온 진물과 양말이 엉켜 붙어 굳어 있었다.
“아….아 아!”
조금씩 떼어 내보려 했지만 온 몸에 전율이 이는 쓰라림에 한 템포 쉬며 깊게 숨을 내뱉었다. 한국에서 계속 잘 신고 다니던 등산화였기에 익숙한 신발이 좋을거라 생각하고 신고 왔지만 이틀 만에 땡땡하게 부어버린 발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작았다. 억지로 구겨 넣은 신발에 발가락 위쪽과 발뒤꿈치가 밀리고 밀려 터져 버린 물집에 쓰라렸다.
‘그럼 슬리퍼를 한번 신어볼까?’
배낭 옆에 꽂아둔 슬리퍼를 꺼내어 갈아 신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3일간 꺼내지 못한 본 실력을 드디어 꺼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등산화를 배낭 안에 집에 넣고 다시 걸음을 계속했다. 하지만 다시 1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정강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슬리퍼가 끊어지면 큰 일 난다는 생각에 조심히 걷는 다는 것이 결국 엉뚱한 근육에 무리를 준 것 같았다.
‘등산화 뒤꿈치를 도려내면 좀 나으려나?’
진퇴양난이었다. 슬리퍼를 계속 신으려니 다리가 아프고 그렇다고 등산화를 신으려니 발이 아파서 별 다른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마을에 가서 신발 하나 사고 그때까지는 이렇게 하자.’
배낭에서 맥가이버 칼을 꺼내 그대로 등산화 뒤꿈치를 오려냈다.
‘음… 훨씬 낫네.’
일단은 뒤꿈치에 자극이 가지 않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슬리퍼처럼 조심히 신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했다. 그 편안함도 딱 1시간이었다. 뒤꿈치를 도려낸 무거운 등산화는 걸을 때마다 땅에 끌렸다. 걸을 때마다 쓰지 말아야 할 앞 발목과 정강근에 억지스럽게 힘을 줘 신발을 당겨 주어야 했다. 마을까지 빨리 들어가서 새 신발을 사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일단은 그렇게 버텨야했다. 앞 발목과 정강근이 아파와 걷는 동안에도 계속 불편했지만 이틀간은 자고 일어나면 씻은듯이 나았다. 하지만 셋째 날 눈을 떴을 때 드디어 문제가 터져버렸다.
‘왜 이러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발목을 돌려보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는데 ‘지익 지익’하며 근육인지 인대인지 알 수 없는 부위가 늘어나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을 더 돌려봐도 차도는 없어 텐트를 나와 첫 발을 디디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4,300km 중 이제 겨우 100km를 걸어 아직도 4,200km는 더 걸어야하는데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진아 먼저 갈래?”
“텐트만 접고 바로 올거지?”
“응. 먼저 출발해. 금방 따라갈게.”
먼저간 은진이를 금새 따라 잡을 요량으로 걸음을 시작했다.
생각과는 달리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걸을 때 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마음 속에서부터 짜증이 치고 올라왔다. 별 다른 수 없이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야 했다.
“괜찮아요?”
꽤 뒤에서 올라오던 하이커들이 금새 따라잡고 나의 불편한 걸음걸이를 보고선 물어왔다.
“네. 조금 아파서 그런데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문명과 동떨어진 이 야생에서는 몸이 아프면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최소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는 기어서라도 가야했다.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보니 다행히 3km만 걸으면 작은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샛길이 나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걱정된 것은 은진이가 혹시나 샛길보다 더 많이 멀리 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장소를 정해 만나자는 약속을 해 놓은 것이 아니라 은진이가 이미 지나쳤다면 영락없이 만날 때까지 걸어야만 했다. 3km를 걷는데 한시간 반 이상을 쏟아야 했다.
‘H2O’
물이 있다는 표시가 반가웠다. 화살표를 따라 빈 물통에 물을 채우러 갔다. 그 길을 따라 마을과도 이어졌다. 다행이었다. 익숙한 옷차림의 하이커가 나무 그늘 아래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채 자고 있었다.
“진아!”
자신을 부르는 큰 목소리에 잠을 깬 은진이는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오빠,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게 사실 며칠 전부터 다리가 좀 아팠는데 자고 일어나면 괜찮다가 오늘은 계속 아파서 걷지를 못하겠네..”
“미련하게 왜 말 안했는데?”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말을 꺼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