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
2017년에 계획 했던 우리의 PCT는 한해가 미뤄져 2018년에 하게 되었다.
2017년 4월 24일, PCT를 위해 비행기를 타기 꼭 3일 전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한 모든 장비는 준비가 되었고 매트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아.. 이제 마지막이네.”
머리도 깎고 때도 밀고 시계 배터리도 갈았다. 복잡한 서울의 운전은 사람을 금세 지치게 만들었다.
‘담배 한 대만 태우고 갈까? 그냥 갈까? 얼른 사고 태우자.’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었지만 신난 몸은 그 마음보다 앞섰다..
‘탕’
멀리서부터 점프를 해 뛴 착지가 불완전했다. 계단에 발 앞쪽은 윗 계단에 발 뒤꿈치는 그대로 한 계단 아래로 처짐과 동시에 커다란 파열음이 건물 안을 가득 채웠다.
‘좆됐다.’
직감적으로 보통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큰 소리에 비해 어디 하나 아픈 곳이 없어 마음이 놓였다.
"아… 역시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계단을 오르려고 오른발로 땅을 밀어내는 순간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혼잣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다시 한번 올라가보려고 오른발로 계단을 밀어내는 순간 다시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아…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뒤늦은 후회는 어떤 해결책도 내어 줄 수 없었다. 삼일 뒤면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한 순간에 좌절 될 것만 같은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완파입니다.”
‘아…’
“여기 보이시죠? 잘 가다가 비어있는 곳이 아킬레스건이 끊어져서 그런거에요. 만져보시면 왼쪽하고는 느낌이 다를겁니다.”
의사 선생님은 MRI를 보고서는 끊어진 아킬레스 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힘을 주면 날카롭게 날을 세우는 왼쪽의 아킬레스건과는 달리 오른쪽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전날 들렸던 병원에서 인대가 조금 늘어난 거 같다며 곧 괜찮아질 거라는 말에 안심했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아킬레스건’ 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났다. 동시에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조폭의 아킬레스건을 끊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아킬레스건에 이상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병원을 다시 들리는 것이 두려웠다. 의사 선생님의 확진은 올해의 PCT가 물 건너 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선생님 제가 올해 미국에 장거리 하이킹을 가려고 계획해서 이틀 뒤에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거든요. 혹시 미국 가서 좀 쉬다가 시작해도 될까요?”
“이거 수술하고 낫는데 최소 반년 걸릴 거에요. 미국은 병원비도 엄청나니 올해는 아무래도 힘들어요. 내년을 기약하면서 한국에서 재활하는게 나을 거 같네요.”
“수술 후에 등산 다닐만큼 괜찮아 지기는 하는 거에요?”
“아무래도 몸상태가 수술 전과 같은 순 없게지만 등산, 마라톤 다 가능하니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재활하시면 되요.”
그리스의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 저승세계의 강 '스틱스'에 몸을 담구면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 하여 그의 어미는 발목을 잡고 몸을 담궜지만 유일하게 강물이 닿지 않은 발목에 화살은 맞은 그는 죽음의 숙명을 피할 수 없었다.
담배 한대만 피고 올라갔더라면 그렇게 흥분해서 날뛰지 않았을텐데 왜 그 땐 그렇게 성급했을까? 이 곳이 아니었어도 어딘가에선 언젠가는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PCT가 한해 미뤄졌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선언되자 혼자서 두려워하던 때보다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어제 들린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90%는 힘들 거라며 충격 완화 장치를 심어둔 탓이었다.
공교롭게도 비행기를 타고 있을 시간에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전신 마취를 하기 전 출국장을 지나 비행기에 앉는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지나고 나서의 시간을 뒤돌아 보면 언제나 그렇듯 지난 재활의 6개월을 뒤돌아보니 짧았다. 아니 시간이 빨리 흘러가 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 때는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었다. 동네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에도 아이들의 아킬레스만 바라보고 사람들의 걷는 모습에도 아킬레스건만 쳐다봤다.
그 시간 동안 은진이는 나를 기다려 주었고 1년이 지나 이 길 위를 같이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