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outh California - 3화

첫 마을, Warner Springs

by 빵호빵호


또다시 아파서 나로 인해 걷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 말할 수 없었다. 말하기 싫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았기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진아, 미안한데 여기서 걸어서 나가면 작은 마을 있던데 거기 가서 차 좀 얻어 타고 들어갈까?”
은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얘기하자 그러자고 했다. 첫 번째 마을인 Warners Spring까지 30km, 오늘을 보태 하루만 더 걸어가면 됐다. 차를 타고 들어간다는 것이 부정하게 느껴졌고, PCT의 순수성을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참고 참았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 오빠. 무리하다가는 더 큰일 난다.”


물을 마시고 조금 더 쉬다가 길을 나섰다. 은진이가 앞서고 뒤에서 절뚝이며 흙먼지를 일으키며 걸었다.
이 길 위에만 올라오면 뭐든 척척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관이 생겼고 모든 상황들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속상하고 참 어려웠지만 그게 인생이었다. 30분쯤 걸었을까? 작은 집 한 채가 보였다.
“진아 저기 들어가서 물어보자.”
“응.”
“실례합니다.”
몇 번을 불러도 인기척이 없어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그렇게 소리를 지를 땐 아무 반응 없었는데 마당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큰 개 두 마리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다급하게 작은 건물 속으로 숨어들었다..
“월! 월!”
덩치만큼 커다란 개들의 짖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져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진아 우리 어떻하노?”
“일단 기다려야지 뭐.”
주변을 둘러보니 차곡히 쌓인 수건과 세탁기 2개가 우리가 있는 곳이 세탁실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세탁실 안에서 집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영락없이 갇힌 생쥐 꼴이 되어야 했다. 20분 정도 지나자 은진이가 먼저 차 소리를 듣고서 말했다.
“오빠, 차 소리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밖에서 엔진 소리와 함께 흙을 밟는 타이어 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살았다. 진아, 이제 나가보자”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보았다. 개들도 보이지 않고 더 이상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좀 더 바깥으로 나가보려 했지만 또 언제 개들이 달려들지 몰라 일단 기다리고 있었다.
고요함이 지속되어 불안함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갔는데 이내 적막한 분위기는 부서지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Freeze!”
건장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아.. 시발 이거 뭐고 진짜.’
그의 입장에서는 무단 침입자가 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으니 있을법한 일이었지만 참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PCT 하이컨데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못 걸어서 도움을 청하려고 트레일에서 빠져나왔어요. 밖에서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들어왔는데 개들이 갑자기 달려 들어서 세탁실로 숨어 들어왔어요.”
두 손을 머리 위에 번쩍 만세를 하고서 대답했다. 영화에서 총을 앞에 두고도 침착하게 구는 사람들은 다 거짓말이라 생각되었다. 팔을 귀에 딱 붙였다. 그는 다시 한번 우리를 천천히 살펴보더니 그제야 총집으로 총을 거둬들였다. 완전한 긴장상태에서 갑자기 그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은진이는 울먹이고 있었다.


“하하하하.”
우리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뒤쪽에 있었던 아주머니가 나타나 크게 웃었다. 아저씨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는 스타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뒤에서 이야기 다 들었는데 오늘 안 그래도 Warner Spring에 갈 일이 있는데 제가 태워 줄게요. 잠시만요.”
스타 아주머니는 집 안으로 짐을 챙기러 들어갔고 아저씨는 여전히 우리를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무단침입 시에 총을 쏘더라도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을 만큼 사생활 보호가 엄격하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작은 가방을 하나 매고 집 안에서 나왔다. 우리의 큰 배낭을 차에 싣고 아주머니의 차에 올라탔다.
“그이가 너무 터프하죠? 하하.”
아주머니는 아까의 상황이 떠올랐는지 한 번 더 크게 웃었다.
“아마 가족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네요. 우리는 원래 샌디에고에서 살다가 이곳에 놀러 왔다가 너무 좋아서 아예 이사를 왔어요. 남편은 소방관인데 지역을 옮겨서 이 근방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주머니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다리는 어쩌다가 그런 거예요?”
“아 며칠 전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한동안은 자고 일어나면 괜찮았는데 오늘은 일어나니까 못 걸을 만큼 아파서 결국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싶어서 중간에 빠졌어요.”
“오래 걸어야 하는데 큰 일이네요. 여기가 워너 스프링즈에요.”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워너 스프링스에 도착했다. 걸어서 와야 한다면 하루 종일 땡볕 아래를 걸어야 하는데 일주일 만에 맛보는 문명의 맛은 달콤했다.
“여기서 몸조리 잘하세요. 그리고 무사히 완주하길 빌어요.”
“고맙습니다. 스타도 조심히 들어가요.”



워너 스프링스는 작은 커뮤니티로 공동체의 단위로는 커뮤니티 위에 마을, 마을 위에 도시로 공동체의 단위가 커진다고 했다. 커뮤니티 센터에는 하이커를 위한 공간이 있었다. 커뮤니티 센터 건물 안에 들어가 공간의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듣고 들어오면서 보았던 하이커들의 텐트가 여러 동 처진 커다란 나무 아래로 향했다. 우리와 같은 날 출발했던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다. 우리는 차를 타고 들어왔으니 일주일 만에 그들과 적어도 하루 이상의 거리가 차이가 나 있었다. 그렇게 쌓인 차이가 누군가는 빠르면 4개월 만에 캐나다 국경에 닿을 수 있게 했고 누군가는 6개월이 넘게 걸려 캐다가 국경에 닿을 수 있게 만들었다.


한쪽에 자리 잡고 우리도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차를 타고 들어와 찝찝한 마음이 한편에 있었지만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맞는 휴식이 좋았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야외 샤워실이었지만 바켓에 물을 받아하는 샤워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티셔츠는 바켓에 물을 담아 몇 번 휘젓지 않았는데 금세 때 구정물이 가득해졌다. 은진이까지 샤워를 마치고 아끼고 아껴두었던 비빔면에 맥주까지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모든 걸 잊고 편히 쉬고 싶었지만 아프기 시작한 몸이 언제 괜찮아질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계속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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