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outh California - 4화

몸이 주는 신호에 귀 기울이자

by 빵호빵호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마음 속으로 ‘제발, 제발’하며 조심스럽게 발목을 움직여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강근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여전하였다.

‘그래. 쉽게 낫진 않겠지.’

아쉬움을 달래고서 텐트 문을 열고 나갔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잔 탓에 이미 해는 높이 솟아있었다. 냉찜질을 해줄 요량으로 샤워장 쪽을 향했는데 나무 그늘 아래 어제처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나도 한쪽에 앉았다.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PCT를 온다는 게 집 앞 산책을 나가듯이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PCT에 대해 알게 되고, 도전을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고, 조금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고, 그렇게 D-1year, D-100, D-10, D-1, 그렇게 D-day, 멕시코 국경을 떠난 지 1일, 2일 이제는 시작한지 일주일, 길을 나섰을 때 벅차 올랐던 마음이 가라앉고 지금은 힘들다는 생각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 마음이 웃기네요.”

우리와 같은 날 출발했던 독일 아주머니였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오고 싶었던 PCT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아주머니가 던진 화두에 하이커들은 비슷한 감정들을 나누었다.


“아주머니, 스티브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는 어제 떠났어.”

“역시 빠르네요.”

스티브 할아버지는 샌디에고의 트레일 엔젤 스캇의 집에서 우리와 같은 텐트를 썼었다.


IMG_0034.JPG 멕시코 국경 캄포에서 스티브 할아버지의 뒷모습


“장거리 하이킹 해본 적 있니?”

“아뇨. 원래 등산을 좋아하긴 했었는데 며칠씩 텐트, 음식을 지고 다닌 적은 없어요.”

“장거리 하이킹은 말이야. 50%의 체력과 50%의 정신력이지. 그리고 뭐라도 자주 먹어 줘야해. 에너지 소모가 많거든.”

반바지 밑으로 나온 힘줄 가득한 종아리가 그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체력이 모지라던 초반에는 정신력은 체력이 무너지는 순간에 찾아 온다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후에 별다른 이유없이 정신력의 위기가 찾아오는 때에는 할아버지의 말을 주문 삼아 순간을 이겨내는 때가 많았다.

‘이제 할아버지를 다시 볼 일은 없겠구나.’


의도치 않게 이틀만 쉬려고 했던 첫 마을에서 5일을 쉬어 버렸다. 장을 보고 신발과 하이킹 폴도 은진이와 같이 하나씩 장만했다. 신발은 사이즈별로 몇 번을 신어보고 결어보고 발 볼이 넓어 발이 숨을 쉼 수 있는 것으로 골랐다. 다행히 5일만에 다리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괜찮아 졌다. 새로 산 신발이 편했고 하이킹 폴이 다리에 가는 무게를 분산해주어 워너 스프링스를 떠난 며칠간 아픈 뒤 다시 아프지 않았다. 하는 것 없이 5일을 보낸 다는 것은 무언가라도 하는 바지런한 성격인 내게는 고역이었다. 이후로 두 가지 큰 나만의 원칙이 생겼다.


‘몸이 주는 신호에 귀 기울지자.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무게 이상을 욕심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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