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outh California - 5화

첫 물의 고비

by 빵호빵호


“하..아, 하…아.”

사막에서의 물은 금만큼이나 귀했다. 금 한덩이와 물 한통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여지없이 물통을 선택할만큼 물은 귀했다. PCT 관련 앱인 Guthook은 PCT 트레일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나타나 있었다. 어느 곳에 물 포인트가 있는지, 어느 곳에 마을로 빠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어느 곳에 좋은 캠프 사이트가 있는지 모든 것이 나타나 PCT를 걷는데 한결 수월했다.


사막에서의 물 포인트는 길게는 20~30km에 하나 정도 나타났다. 그래서 물이 있는 포인트에 맞춰 한번에 3~5L의 물을 항상 지고 다녀야 했다. 보통 물은 10km에 1.5L 정도 마셨다. 텐트를 치려는 곳에 물 포인트가 없으면 마지막 물 포인트에서 저녁 해먹을 물, 저녁에 마실 물, 다음 날 아침에 걷기 시작해서 다음 물 포인트까지 마실 물, 그 모든 물을 계산해서 받아야 했다. 물 포인트 근처에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최대한 물을 지고 다니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그마저도 뜸하게 있는 물 포인트들이라 맞추기는 힘들었다.


4월 말에 시작해 5월에 접어든 사막은 하루하루를 더해갈수록 건조해지고 뜨거워졌다. 땅만 보며 걷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저 멀리 어김없이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는 마음을 옥죄어왔다. 어느 날은 지도에서 물 포인트를 확인해 여유 있게 물을 마셨다. 막상 물 포인트에 도착하니 고인 물에 벌레와 녹조가 가득해 정수를 하더라도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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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만나는 물 포인트들


“오늘 올해 가장 덥다고 하네요.”
작은 초목 아래 몸을 숨긴 하이커 옆을 지날 때 나를 향해 그가 힘없이 말했다. 왠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덥게 느껴졌고 실제로 그랬다. 다음 물 포인트까지는 아직 5km가 남았는데 벌써 물이 동이 났다. 누워있던 하이커가 안고 있는 물통의 물도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일단 은진이가 있는 곳까지는 가야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옮겨 보았지만 100m를 나눠 걷기를 몇 분, 바짝 마른 입 안에 단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빠.”

커다란 바위 아래 숨어있던 은진이가 불렀다.

“지이, 진아 언제 왔는데?”

말라 붙은 입 안의 혀가 입 천장에 달라 붙어 말을 하기가 힘이 들었다. 목 안에서 소량의 침을 짜내 습기를 더해보았다.
“한 10분됐나. 오빠도 물 다 떨어졌나?”

은진이도 물이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응. 1km 전에 물 포인트 있던데 와 도저히 물 못 받겠던데.”

“나도 거기 봤는데 그냥 왔다. 벌레 떼 죽은게 막 떠 있더라.”

은진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옆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젊은 남녀 하이커가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전 잭이라고 해요. 얘는 여동생 새라에요.”

“안녕하세요. 전 호라고 해요. 여자친구는 진이에요.”

겉모습에서부터 하이커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잭과 새라였다.

“오늘 엄청 덥죠? 물은 충분히 있어요?”

잭이 물어보았다.

“아니요. 안 그래도 워터캐쉬까지는 4km정도 남았던데 물이 다 떨어졌는데 너무 더워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중이에요.”

워터캐쉬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물 공급원이 아닌 트레일 엔젤들이 오랜 구간 물이 없는 곳에 하이커들을 위해 수십통의 물통을 가져다 놓는 인공 물 공급원이었다. 트레일 엔질이 바빠 활동을 못하는 경우에는 물통이 비어있을 가능성도 있기에 안정적인 물 공급원이라고 할 수는 없어 무작정 믿을 수는 없었다.

“저희가 워터캐쉬까지는 4명이서 물을 나눠 마실 수 있을만큼 물이 있는데 좀 쉬었다가 같이 가죠.”

천만다행이었다. 이미 꽤 긴 시간 동안 찾아 온 갈증이었기에 해소가 되기 전까지는 걷고 싶어도 걸을 몸 상태가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새라는 작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둘 다 어리 때부터 PCT를 하고 싶어해서 올해 시작했어요. 저는 한해 늦었지만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 시간도 있고 해서 마음먹고 시작했죠.”

“와 정말 대단하네요. 어려 보인다고 생각은 했는데 정말 대단한 결심을 했네요.”

“근데 배낭이 왜 이렇게 커요?”잭이 내 배낭을 보며 말했다.

“그냥 이것저것 챙겨 다니다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잭 배낭 한번 들어봐도 되요?”

그의 배낭이 너무 가벼워 보여 들어보니 정말 가벼웠다. 그 속에는 경량 스토브, 작은 코펠, 먹을거리, 그리고 속옷 하나, 양말 하나, 텐트도 가벼운 걸로 그게 전부였다. 배낭도 1kg가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에 얼마나 걸어요?”

우리는 하루에 30km를 채 걷지 못해서 물어보니 잭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40km는 걷고 더 걷는 날이 많죠. 배낭 무게 줄이는게 제일 중요해요.”

잭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충분히 쉬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잭은 길을 나서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Mother Fucker!”

잭이 배낭을 둘러매며 소리쳤다. 나도 그를 따라 'Mother Fucker!' 욕을 하며 무거운 배낭을 둘러멨다. 욕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나머지 두명의 여자들은 조용히 배낭을 둘러 메고 길을 나섰다.


은진이, 나, 새라, 마지막에 잭 일렬로 서서 작은 부대를 이뤘다. 오르막을 오른지 얼마지 않아 은진이가 멈춰섰다. 허리를 굽혀 양 무릎에 손을 얹어 헥헥 거렸다.

“오빠, 그냥 먼저 올라가.”

어깨너비의 좁은 길을 은진이가 막아서자 네 사람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은진이는 오르막에 약한 편이었다.

“잭, 새라 미안한데 여자친구가 힘들어해서 둘이서 먼저 가요.”

갑자기 새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자 이거 먹고 빨리 걸어요. 멈추면 우리 다 죽어요.”

새라는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녹조와 벌레 가득했던 물을 떠왔다. 그리고 그 물통 입구에 정수기를 결합해 놓았다. 그 물통을 은진이에게 건냈다.

‘은진이가 저걸 마실까?’

4km를 물 없이는 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수기가 결합 되어 있다고 해도 새라가 건낸 물을 마시고 걷기는 쉽사리 마음에서 받아들여 지지가 않았다.

‘헉….’

은진이가 먼저 정수기에 입을 대고 초록 물을 마셨다.

“호도 얼른 물 마셔요.”

새라가 은진이에게 받은 물통을 나에게도 주었다.

‘뭐라고? 저걸? 아….. 모르겠다.’

입을 대는 순간 은은하게 퍼지는 녹조향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물을 온 몸이 그대로 빨아들이는 기분이 들었다. 새라는 우리가 먼저 가지 않으면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은진이도 갈 생각이 없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사막 위를 채웠다. 결국은 은진이가 백기를 들고 다시 우리 부대는 행군을 시작했다. 입안이 마르지 않게 땀으로 젖은 수건을 입에 물고 코로 숨을 쉬었다.

“자,자,자!”

잭과 새라는 군대 교관 같았다. 둘은 이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뒤에서 10살도 더 많은 삼촌과 이모를 능숙하게 조련했다. 그렇게 둘의 이끌림을 받고 긴 오르막의 끝에 다다랐다. 이후에는 계속 내리막이었다. 걸음도 빨라지고 목도 덜 말랐다. 그리고 내리막의 끝에 워터 캐쉬를 만날 수 있었다. 빈 워터캐쉬 낡고 오래된 여닫이 나무문을 여는 순간 네 사람 모두 절망에 빠졌다. 4L짜리 물통이 50개는 들어있었는데 하나같이 텅텅 비어있었다. 잭과 새라의 냄새 고약한 물 마저도 벌써 다 마신 상태였다. 물은 또 수 키로는 앞에 있어 물 없이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었다.


IMG_0845.JPG 트레일 엔젤들이 가져다 놓는 워터캐쉬(Water Cache)


“잭, 아까 전에 내려오면서 건물 있는 거 봤어요?”

내려오는 길에 조금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넓은 마당이 있는 공장 같은 건물이 하나 보였었다.

“네. 봤어요. 그럼 일단 거기로 가보죠.”

새라와 은진이는 그늘 아래서 기다리고 잭과 나는 우리가 가진 물통을 모두 챙겨서 건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악을 쓰고 소리를 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도 별다른 수가 없어 잭과 휀스를 넘어가 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다시 소리쳐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제일 처음 보이는 건물에 들어갔더니 간이 화장실이었고 수도꼭지가 있었다.

“잭. 살았네요. 제가 물을 받을게요.”

잭은 알겠노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다급하게 빨리 나가자며 내 티셔츠를 끌어 당겼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일단 빨리 따라 나와요.”

물을 1L밖에 받지 못했는데 잭에게 이끌려 다시 휀스를 넘어 나왔다.

“화장실 옆 건물에서 마리화나 키우고 있어요.”

캘리포니아에서 마리화나는 불법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어서 물어보니 잭이 그렇게 성급하게 내 옷을 당겼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물론 마리화나 피우는 건 괜찮은데 재배는 불법이에요. 만약에 저걸 키우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죽일지도 모른다구요!.”

잭과 함께 은진이와 새라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일주일 전 무단침입으로 죽을뻔했던 일이 떠올라 무작정 달렷다. 네 사람 모두 목이 말랐던터라 1L의 물을 나눠 마시니 금새 없어졌다. 이제는 총을 맞아 죽진 않겠지만 목이 말라 죽을 참이었다.

“일단 물 없이는 걸을 수 없으니까 해가 지면 좀 나을 거에요. 그 때까지 기다리는게 나을 거 같아요.”

잭은 말했고 세 사람은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나무가 만드는 그늘 아래서 한 사람씩 슬슬 눈을 감고 다같이 잠이 들었다.

‘붕~.’

얼마나 잠이든 걸까, 차 소리에 잠이 깨서 눈을 떠보니 한 아주머니가 차를 세우고서는 물통을 나르고 있었다. “진아, 잭, 새라.”

피곤함에 깊이 잠든 세 사람을 깨워 눈 앞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와우.”

네 사람 모두 벌떡 일어나 아주머니가 물통 옮기는 걸 도와주었다. 물이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마을에서 물통을 채워서 왔다고 하셨다. 다시 50개의 물통이 물이 꽉 찼고 아주머니는 빈 물통을 차에 싣고 금새 떠났다. 1L를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마시고는 물통에 물을 다시 채워 넣었다.

“우린 이제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거에요?”

물을 다 채운 남매가 배낭을 둘러매고 물었다.

“우리는 조금만 더 쉬다 갈게요.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아직은 기력이 회복되지 않아 남매를 먼저 보냈다. 둘 덕분에 사막에서의 첫번째 물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 후에는 PCT 길 위에서 다시 남매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무사히 완주하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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