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오빠, 이제 나 PCT 그만하고 싶다.”
PCT를 시작한지 2주가 조금 지났다. 도로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있는 카페에 들러 맥주와 햄버거를 먹고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은 맞으며 낮잠을 자고 복귀를 했다. 복귀 하고 10분 정도 걸었을 때였다. 왜라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은진이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한국인이 없는 이곳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말할 사람이 없었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맞춰서 걷는 일은 굉장히 힘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속력으로 걷다 보니 떨어져서 걸어야 했고 쉬는 시간에나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게 하루에 하는 대화의 거진 전부였다. 은진이는 2주가 넘도록 외로웠고 앞으로도 외로울거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진아 많이 힘들제?”
말없이 은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 혹시 어떤 점이 힘든데?”
혹시나 은진이의 속마음을 잘못 짚은 건 아닐까 싶어 물어보았다.
“나는 사실 걷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영어를 못하니까 하루 종일 이야기도 안하고 걷기만 하니깐 생각만 하게 되는데 힘들고 재미가 없어서…”
문득 10년 전 혼자서 인도에 자전거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지니 매순간 머리 속에 끊임없이 생각이 치밀어 올라 괴로웠었다. 외로움은 사람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진아 그러면 앞으로 계속 맞춰서 다니는 건 나도 체력이 안되니까 할 수 없고, 하루에 일정 시간은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도 하면서 걸어보는 건 어떤데?”
“….”
은진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거의 2주만에 은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저녁 시간에도 지도를 보며 내일은 어떤 길을 걸을 지에 대한 이야기와 아니면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우리의 중심은 아니 나의 중심은 온통 PCT였었다.
“진아, 인도에서 첫날 사기 당한 거 기억나나?”
PCT를 하기 전 우리는 인도를 3개월 가까이 여행했었다. 당시 뉴델리에 밤 늦게 도착했는데 시내 중심가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뉴델리에 무슬림 테러가 났다며 빨리 다른 도시로 도망가라고 해서 택시비를 15만원이나 주고 뉴델리를 벗어났었는데 알고 보니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잘 당하는 사기 수법이었다.
“응. 그래도 그 때 처음에 한번 당하고 나서는 더 안 당했었잖아.”
첫날 그렇게 당하고 나서부터는 그것도 경험인지라 더 이상 사기를 당한 일은 없었다.
“그래도 값싸게 좋은 교훈 얻었지 뭐.”
그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일, 우리가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니 나도 기분이 한결 더 좋아졌다. 진작에 이런 시간들을, 이런 대화들을 나누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모든 힘든 순간들도 옆에 함께 하는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힘들지 않을 수 있었다. 진부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소통은 참 중요했다. 정신적 고립은 부정적인 생각을 증폭시키기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