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outh California - 7화

짐 덜어내기

by 빵호빵호


배낭, 텐트, 침낭, 하이킹폴, DSLR 카메라, 망원렌즈, 광각렌즈, 카메라 배터리 4개, 충전기, 아이패드, 휴대폰, 코펠, 버너, 이소가스, 일주일치 음식, 고추장, 대용량 라면스프, 전동 면도기, 팬티 3장, 티셔츠 3장, , 양말 3켤래, 바람막이, 경량패딩, 동계용 바지, 춘추용 바지, 여름 바지, 장갑, 아이젠, 일기장, 세면도구, 겨울까지 대비해 야생에서 지낼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였다. 하루에 30km씩은 걸어야 하는 PCT에서 무거운 배낭은 가장 큰 적이었다. 무게를 정확히 재어 보지는 않았지만 20kg는 족히 나갔다. 신발의 문제도 있었지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고 다니다 보니 다리에 무리도 온 것이었다.

“진아, 우리 짐 좀 줄일까?”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

“근데 우리 맡길 데가 없잖아.”

“숙모가 미국 사신다고 하는데 연락 한번 해볼까 싶네.”

PCT 시작 전 삼촌은 미국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숙모의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다. 그간 생각하지 못했지만 몸이 버거워지자 생각이 났다.

“그래. 동계용품은 진짜 미련한 짓이지.”

겨울까지 걷는다고 생각해서 챙겨왔지만 사막 위를 걸으며 또 앞으로 수 개월은 여름일텐데 생각을 하니 더 이상 지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두번째 마을 Idyllwild에 들어왔다. Jacinto 국립공원을 가까이하고 있는 산중 마을이라 공기도 맑고 커다란 나무 그늘 덕분에 마을 전체가 시원했다. 캠핑장 한곳에서는 하이커들만을 위한 구역도 따로 있어서 요금을 지불하고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IMG_0531.JPG 마을 안 캠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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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올 때 마다 한국에서 챙겨온 고추장으로 제육볶음도 해먹고 원없이 에너지 보충을 한다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을 드리는게 죄송했지만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숙모는 주소를 가르쳐주며 짐을 부치고 나중에 필요할 때 연락하면 다시 보내주겠다고 했다. 2주동안 딱 한번 쓴 무거운 망원렌즈와 동계용품 그리고 전동 면도기도 보내버리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안녕하세요.”

숙모에게 짐을 보내고 장을 보고와 시원한 캔맥주와 함께 붉은 양념이 잘 베어진 제육볶음을 한참 먹고 있을 때였다.

“네. 안녕하세요.”

“전 테드라고 해요. 영국에서 왔어요.”

장발의 사나이는 자신을 소개하며 우리 곁으로 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PCT에서 만난 서양인들은 대체로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저는 호, 여자친구는 진이에요. 한국에서 왔어요.”

“와, 전 최근까지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PCT를 하려고 그만두고 왔어요.”

“아 정말요? 일본은 어때요?”

“재밌죠. 영국하고는 완전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니 흥미롭기도 하구요.”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영어의 힘이 강해서 영미권 사람들은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저는 지금 이 캠핑장에 일주일 째 머물고 있어요.”

“왜요?”

아직 PCT 초반이고, 이곳에 일주일이나 머무를만큼 무언가 있지는 않아 의아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내가 다쳐서 꼼짝할 수 없었던 정강이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어느 날 아프기 시작하더니 며칠 지나니까 더 이상 걷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이 근처에 마사지 샾이 있어서 매일 들러서 마사지 받고, 얼음찜질 해주면서 지내다 보니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네요.”

첫 마을 워너스프링에서 언제 나을까 걱정하며 마음 졸이던 때가 생각이 났다.

“저도 테드하고 비슷한 곳이 아파서 워너 스프링에서 5일 쉬었거든요.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신발 바꾸고 나서 괜찮아 졌는데 한번 바꿔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참고 할게요. 고마워요.”

그는 그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그도 자신의 상황이 불안하고 걱정되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걷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제로데이는 좋았다. 일주일간의 고생을 스스로에게 보답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산에서 일주일을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이틀의 휴식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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