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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l 11. 2020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네가 행복하다면 그거면 됐어

금요일 오전엔 큰 아들만 곁에 있다. 동생들 모두가 등교, 등원하는 날이기에 아이는 엄마와 함께 하는 자유 시간을 단단히 별렀다. 동생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비 온 뒤라 날씨가 쾌청했다. 함께 걸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네의 천을 나는 걷고 아이는 자전거를 탔다. 과학 무식자 엄마에게 한때 곤충학자를 꿈꾸었던 아이는 실잠자리, 대왕 잠자리, 밀잠자리, 고추잠자리, 장수잠자리를 가리키며 각각의 다른 점을 설명해준다. 잠자리들이 영역 싸움하는 모습도 알려준다.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이 암컷 위에 있는 것도 알려준다. 아이는 나의 친절한 과학 선생님이다.


비 온 뒤라 산책길에 나와 있는 지렁이며 달팽이며 아이는 자전거에서 기꺼이 내려 풀잎으로 감싸 풀 속에 다시 데려다 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잘 살으라고 이야기도 건넨다. 산책길에 있었으면 걷는 사람들이나 자전거에 밟혀 죽었을 테니.


물뱀도 봤다. 아이는 물뱀이 결코 흔한 게 아니라며 흥분했다. "엄마, 물뱀, 물뱀!" 해서 가보니 아이가 어서 사진기를 꺼내라고 재촉한다. 사진기를 민첩하게 꺼내 귀중한 장면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내 행동이 굼떴나 보다. 물뱀은 숲으로 이미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수영하는 물뱀의 귀한 사진 못 건졌다고 아들에게 걷는 내내 타박을 들었다. 다행히 노린재와 백로 사진은 건졌다며 아이는 가슴을 쓸었다.


시냇물에 발도 담갔다. 시원하다고 했다. 자기는 커서 냇가 옆에 집 지어서 살 거라고. 여름이면 이렇게 발 담그고 살 거라고 했다.


어제 저녁에 아이가 식탁에서 말을 건넨다. "엄마랑 천에서 발도 담그고 단 둘이 하루 종일 보낸 오늘, 정말 좋았어. 난 이런 날이 제일 좋아!"


천진난만한 그 모습, 행복해하는 그 모습 보니 내 얼굴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


그저께 동네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분을 만났다. 우리 큰 아이 이야기를 하다 잘 치고 나갈 수 있는 아이 데리고 왜 가만히 있냐고 하셨다. 과학고 보낼 거면 어서 시내에 Y학원에 빨리 집어넣어 진도 팍팍 빼라고 한다. 5학년이면 이미 중학교 수학 다 떼고 있고,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3년 수학 다 떼고 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하루 종일 마음이 동요했다. 정말 내가 바보같이 가만히 있는 건가? 아이가 과학고를 가고 싶은데 아이를 못 끌어주고 있나?


내 아이, 과학고 가기를 원한다. 과학을 하도 좋아해서 4학년 때쯤 이런 학교가 있다고 소개해줬더니 아이는 두 눈이 금세 반짝였다. 아이는 그 이후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아이와 내가 가고자 하는 방식은 남들이 다 하는 방식이 아니다. 아이는 아이 나이에 맞게 성장할 거고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걸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다. 오후 내내 동네에서 동생들과 미친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야구 시합을 하는 것, 오늘처럼 엄마와 단 둘이 천을 걸으며 몇 시간씩 데이트하는 시간을 갖는 것, 스마트폰과 게임이 아닌 자연과 동물을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건 아이가 과학고 가서 서울대 가는 게 아니다. 본인이 원하니 과학고를 가면 좋겠지. 하지만 안 가도 그만이다. 설령 과학고에 가지 못하더라도 내 아이는 꿈을 이룰 거다. 그리고 세상에 귀하게 쓰일 거다.


나는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게 과학고, 좋은 대학에 가서가 아니라 평생 자신이 원하는 일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이 뭐냐고? 그게 오늘처럼 냇가에 발 담그고 첨벙첨벙하는 거라면 나는 아이가 자주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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