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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l 11. 2020

자살은 남겨진 자에게 폭력

고 박원순 서울 시장의 성폭력에 대해 묻다

가까운 가족 중의 한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 곁에 남겨진 자가 마지못해 삶을 살아내는 모습도 15년간 지켜봤다. 남겨진 자는 삶을 스스로 버린 자가 남기고 간 죽음의 그늘 속에 고통과 더불어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자살은 가족과 주변인에게 씻을 수 없는 폭력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겨진 자는 살아있는 채로 속수무책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나는 문학을 빌어 자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내면의 심리적 갈등과 내면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낸 세계 3대 전기 작가이자, 나치의 유태인에 대한 박해를 견디다 못해 오스트리아를 떠나 런던, 미국, 브라질까지 망명해서 생을 이어갔던 슈테판 츠바이크도, 아우슈비츠 학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프레모 레비도, "순수하게 살아 계십시오. 자신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던 다자이 오사무도 결국 자살했다. 삶을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던 이들도 어느 시점엔 견딜 수 없을 만큼 생이 가혹했을 터다.


고 박원순 서울 시장도 생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웠을 게 분명하다. 그랬으니 대선 주자로 나서 탄탄 가도를 달릴 수 있고 서울시 최고의 권력과 명예의 자리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보다는 죽음을 택했다. 성폭력 사건에 휘말려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죽음보다 더 두려웠을 테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남겨진 자들에게는 폭력이다. '박원순 성추행 의혹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는 뉴스 기사를 접하며 나는 피해자의 무력감에 감정 이입을 느낀다. 가족 중의 누군가를 자살로 떠나보내며 나와 내 가족이 느꼈던 생에 대한 허무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피해자는 생에 대해 무력하다.


뉴스 기사를 여기에 옮겨 적어 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지면서 서울시 전 직원이 박 시장을 고소한 '성추행' 의혹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이에 따라 관련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가릴 수 없게 됐다. (중략)

'검찰 사건사무규칙' 제69조는 수사받던 피의자가 숨질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겨레 신문 2020.7.11 토요일 기사 중-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면서 면죄부를 받고자 했다면 그건 고 박원순 시장의 잘못된 판단이다. 지금 국민들은 분개하고 있고, 남겨진 피해자는 평생을 침묵 속에서 살아야 한다. 비겁하다. 성폭력 후 죽어버리면 되는 세상, 이건 법이 잘못이다. 법이 잘못이면 법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시민사회 운동을 했고, 페미니스트였다는데 나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성폭력 사건을 묻는 기자에게 이해찬은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후레자식이란 소리를 했다는데 죽음으로써 죄를 덮을 수는 없는 문제다. 나는 박원순이 내가 전혀 모르던 사람으로 느껴진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 시편 144장 4편

남의 가슴에 못 박는 사람과 그들의 시대.  치욕과 원한의 못이지만 그것은 권력의 부스러기일 뿐이다.p.168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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