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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Jul 19. 2020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

잊지 않고 너의 건강을 꼬박꼬박 체크할게

이번 주 초에 차를 운전하고 가다 도로에서 차 시동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배터리 충전을 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아 곧 차는 견인됐다.


다행히 아파트 단지 입구였다. 시속 10킬로 미만으로 가고 있을 때다. 뒤에 막둥이도 카시트에 타고 있었는데 암만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빠르게 운전하는 도로였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돈 관리에서부터 집안의 소소한 잡무들까지 자질구레한 일들은 다 내 몫이다. 그동안 여러 가정들의 주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집안의 일은 부부 중 성격 급한 사람이 못 참고 다 한다. 전구 가는 것과 연말정산 빼고는 내가 집안의 일들은 다 처리한다. 나름대로 일정 관리를 하면서 세금 납부, 자동차 보험료 갱신 등 꽤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차량 점검 시기가 훌쩍 지났는데도 차를 그냥 탔나 보다. 내가 운전하는 영역은 동네가 전부라 대처가 안이했다.


신랑이 이제는 폐차하란다. 폐차는 무슨 폐차.  15년 됐지만 몇십 년도 더 탈 수 있다. 고쳐서 나오니 나의 오래된 애마가 스무쓰 하게 잘 굴러간다.


이 차, 버리지 못한다. 우리 집의 역사가 담긴 차다. 결혼 하자마자 떠난 미국에서 우리 부부, 처음 타기 시작해서 아이가 한둘 늘어 아이들을 싣게 된 차. 카시트만 해도 각기 다른 세 대가 지나갔다. 그리고 한국 올 때 배에 태워 왔다. 신랑 없을 때 나와 아이들 네 명 다 실을 수 있을 만큼 아직 튼튼하다. 아이들 여기저기 숱하게 실어다 나른 차다.


겨울이면 좌석 뜨끈하게 해주는 보온 기능도 없어 겨울에 운전하기가 꽤 춥다. 이제는 다들 USB, 블루투스 기능들이 장착된 최신 차도 많지만 내 차는 음반 쪽이 고장 나서 시디마저 들어가지 않는다. 차에서 음악 감상은 포기했다. 스마트폰으로 찾아 듣기에는 복잡해서 그냥 라디오 켠다. 가죽이 아닌 천 시트라 뭐 좀 심하게 흘리면 냄새 빠지는 데도 시일이 상당히 걸린다. 이 년 전 여름, 친한 동생 아들이 뒷좌석에서 멀미를 해서 전체 내부 세차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랬는데도 천 시트에서 냄새가 오랫 동안 빠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오래됐지만 이제는 정이 들어 절대 버리지 못하는 내 차, 점검이나 잊지 않고 꼬박꼬박 잘 받아야겠다. 사물과도 정이라는 게 들 수 있다는 걸 이 차를 통해 알았다.


월요일에는 농협에 가서 배추 씨앗을 꼭 잊지 말고 사야지! 큰 아들 학교 수행 평가로 해가야 한다고 저번 주부터 배추 씨앗을 사달랬는데 못 샀다.


도로에서 차 멈추지 않으려면 차량 점검 잊지 말고 받으세요^^.

어제, 2020.7.18, 맑았던 하늘
어제, 공주에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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