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를 마친 딸을 데리고 집에 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누가 봐도 '우리 자매에요.'라고 얼굴에 써진 눈매가 선한 두 자매가 타고 있었다. 두 자매의 양손에는 먹거리가 가득했다. 우리 라인에 사는 자매의 언니를 안다. 동생이 조카들과 언니를 보러 언니 집에 놀러왔나보다.
순간 정신이 멍해지면서 그 두 자매의 닮은 모습, 우애 좋은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매이신가봐요. 닮았어요. 보기 좋네요~ "라고 말했다.
언니가 "네~ 동생이 가까이 살아서 좋네요~"라고 대답한다.
갑자기 내 안에 애도되지 않은 무의식 속 슬픔과
'우리도 저렇게 살 수 있었는데...'라는 부러움과 언니에게 못해준 회환과
음대 다녔던 언니가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하고 떠난 과업을 내가 성취해야만 한다는 사명감, 이 모든 감정이 순식간에 한꺼번에 몰려온다.
이모를 이 세상에서 만나본 적도 없고,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딸에게 "사랑아~ 두 분 닮았지?"하며 딸에게 괜히 한 마디 거들었다.
애도되지 않은 감정은 어떻게든 돌아온다. 음악이 내 남은 생애의 과업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언니가 떠난 매년 11월이 되면 마음도 몸도 시려온다.
2005년 이 세상을 등진 음악하던 언니를 떠올리며 쓰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산다는 것은 곧 자신이 과업 자체가 된다는 의미이다. <레드북>, 칼 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