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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Dec 20. 2019

백지 감정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다-

언니가 죽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슬프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서른두 살 꽃다운 나이에 저버린 한 인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고, 당시 홀로 남겨진 돌쟁이 조카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고 남들이 속닥거리고 손가락질할 것만 같았다. '몰인정한 년'이라고.  

수십 차례 상담을 받으며 언니에 대한 애도를 느껴보려 했다. 상담도 몇 년 전이라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담자가 말하기로 내가 분명 슬플 것이라 했다. 다만 슬픔에 대한 감정 표현을 못 하는 거라고 했었다. 천국에서 만나는 상황을 재현해보기도 했었다. 천국에서 언니를 마주하니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고 그녀에게 미안했다. 나도 살면서 언니한테 못되게 굴어서 미안했다고 말했다. 천국에서는 이제 행복하자면서 상담실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긴 하다. 그때 한 번 아팠다. 그리고는 다시 일상을 살고 있다. 다시 느껴보려 해도 좀처럼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니를 보낸 지 14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 오늘 그 이유를 알았다. 내 감정 장치에 고장이 나서 그런 거다. 감정에도 '백지상태' 같은 감정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오늘도 그래서 딸아이가 입술에 상처가 났다고 얘기하는데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가 말한다. 엄마가 죽었는데 나처럼 아무 느낌이 없다고. 그러면서 이유를 읊기 시작한다. 


그건 내 탓만은 아냐. 물론 내가 좀 정이 없는 사람이긴 해. 그건 인정해. 그러나 만일 그 사람들이, 엄마 아빠가 조금만 더 나를 사랑해 줬더라면 나도 좀 다르게 느낄 수 있었을 거야. 더, 더, 더 슬픈 마음이었을 거야. (중략) 늘 목이 말랐어. 한 번이라도 좋으니 듬뿍 사랑받고 싶었어. 이제 됐어, 배가 터질 것 같아, 정말 잘 먹었어, 할 정도로. 한 번이라도 좋아, 단 한 번만.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단 한 번도 나한테 그런 사랑을 주지 않았어. 어리광을 부리면 밀쳐버리고,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만 하고, 늘 그런 식이었거든. 그래서 난 생각했어. 나를 일 년 내내 100퍼센트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내서 손에 넣고야 말겠다고. (중략)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p.158-159)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100퍼센트 사랑'과 '완벽한 투정'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정신적으로 나사가 어디 하나 빠진 사람이 아니구나. 그런 사랑을 못 받아서 그렇구나. 사실 자매의 돈독한 사랑이 어떤 형태인지, 부모 자식 간에 애절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어떤 게 금상첨화 부부애인지 잘 모른다. 본 적이 없으니. 

오늘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고. 굳이 슬픔을 느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이게 나라고. 그렇게 커 왔던 어린 나를 지금의 내가 위로해주고, 여러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면서 남은 생은 살아가면 된다고.  

느끼고 싶다. 마음껏 기쁘고 마음껏 슬프고 싶다. 마음껏 공감하고.  

그렇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내 감정을 도화지에 그린다면 백지라도 괜찮다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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