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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줄리어드 Nov 17. 2021

남이 말린다고 시도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세상

비올라, 첼로, 재즈피아노를 배우는 와중에 성악까지 배운다 하니 모두들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너무 많다고. 그냥 한 개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강행했다. 손목에 통증이 있고 난 후에 내가 악기를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성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물론 현재는 손목 치료를 받고 통증이 사라져 악기도 하고 성악도 하고 있다.


내가 성악 레슨을 집에서 받은 이후 딸도 성악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래서 딸도 나와 함께 성악 레슨을 받고 있다. 딸아이는 레슨 때 배웠던 <가을은> 동요를 날마다 즐겁게 부르고 있다. 3절까지 있는 동요에 4절 가사를 붙여보기도 한다. 딸은 꼬마 성악가이자 시인이 돼가고 있다. 엄마인 내가 내 안에 타오르는 열정을 타인의 만류에 가두어 사그러뜨렸더라면 딸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을 새로운 세상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딸아이의 진짜 적성이 바이올린이나 피아노가 아니라 노래라면? 그런데 엄마인 내가 성악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성악을 배우며 노래의 근간이 되는 이태리어 가곡을 익히고 있다. 성악이 아니었다면 내가 언제 이태리어를 접할 수 있었을까? 낯설지만 한 곡씩 유튜브 딕션 영상도 찾아가며 더듬더듬 익혀보니 어느새 이태리어 가곡, 한 곡의 가사도 익숙해져간다. 내가 이태리어로 가곡을 흥얼거리니 다섯 살 막둥이도 이태리어 가사를 따라한다. 이 아이가 먼 훗날 이태리에 가서 살 지 누가 알아?


성악을 배우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악기가 없이도 연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오늘은 유치원 땡땡이를 친 막둥이랑 공원에 갔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기에 조용히 발성 연습을 했다. 특히 차 내부는 나만의 발성 연습 장소이다. 네 아이들 라이드로 이 곳, 저 곳 왔다 갔다 하면서 음악도 듣지만 발성 연습을 하기에 차만큼 안성맞춤인 공간이 없다. 누군가의 방해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남은 남이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배우지 말라는 기준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융합 교육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음악이야말로 모든 영역이 한 곳으로 통하지 않나?


누가 뭐래도 내가 선택한 길을 간다. 나는 나 자신을 넘어서, 아이들의 가능성까지도 열어주는 열쇠(key) 쥔 사람이다.

수십 번도 더 반복해 들은 <O del mio dolce ardor>,       나의 첫 이태리어 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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