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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 Apr 02. 2020

사진을 읽어보기

실무자를 위한 디자인 수업


시작은 사진정리부터


사진은 무척이나 편리하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진이 현장을 가장 사실적으로 증언해 주는 매체가 되면서 일상 곳곳에 CCTV나 개인용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다. 이제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면 너도나도 스마트폰으로 증거를 확보하기 바쁘다. 이렇게 사진은 위험에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해 주는 수단으로도 활용되지만, 일상적인 경험을 기록하는 언어로서 생활과 밀접해졌다.  


디자인 수업을 진행해 보면 마음에 드는 슬라이드를 사진으로 촬영하거나 영상으로 기록하는 분들이 있다. 글로 메모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담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저장해야 한다는 기록의 중요성과 별개로, 따로 꺼내서 읽어 보는 데 들이는 시간은 더 줄었다. 


핸드폰에 써서 메모해 둔 기록마저 언제 이런 걸 적었는지 낯설 때가 많다. 일부러 자판을 눌러서 수고롭게 적은 글도 그러한데, 한 번의 셔터를 눌러서 찍은 간편한 사진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찍은 사람은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생각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디지털 자료는 4년 주기로 20~30퍼센트 정도 유실된다는 통계가 있다. 하드디스크에 랜섬웨어 같은 바이러스 공격을 받거나 저장 공간을 제공하던 회사가 폐업하면서 한 번에 모든 자료가 사라지는 일도 발생한다.    


촬영이 쉬워진만큼 이미지로 기록되는 양이 많아졌다.  




<실무자의 디자인> 수업을 듣는 분들에게 처음 요청하는 건 ‘단체와 활동을 대표하는 사진 10장 골라오기’이다. 수업 전에 메일로 당부 드려도 미리 해오는 분은 별로 없고, 혹은 파일명에 임의의 숫자만 채운 사진을 가져 오기도 하신다. 대체로 수업을 시작하고서야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담긴 사진을 찾아보기 시작하거나 다른 동료에게도 흩어져 있을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달라거나 단체의 블로그,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긁어모으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할 때면 늘 접속할 수 있고 꺼내 보일 수 있다고 믿어 왔겠지만, 산발적으로 쌓인 사진을 헤아리며 꽤 진땀을 흘리게 된다. 


필름 사진기를 사용하던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인화를 해야 사진을 볼 수 있었고, 그걸 앨범에 차곡차곡 넣으면서 한 번씩은 사진을 바라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고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무엇을 찍었는지 확인하고 분류하거나 정리하는 데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한 번의 행사나 활동 현장이 열리면 많은 사진이 생산된다. 전문 사진 촬영을 의뢰하기도 하고 실무단과 참여한 시민들도 촬영하기 때문에 이미지의 총량이 늘어난 셈이다.


양이 많아진 만큼 일정한 주기로 사진을 갈무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은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사업 보고서 작성이나 대외 발표용 슬라이드를 제작해 보면, 의외로 사진 고르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을 것이다. 홈페이지 개편이나 새로 블로그를 하려고 해도 가장 아쉬운 건 늘 ‘마땅한’ 사진이다.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면 점점 초조해진다. 사진의 양은 많아졌지만 꺼내보는 데 시간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실무자에게 디자인에 앞서 필요한 일은 주기적인 사진 정리이다.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미뤄두지 않고, 월 단위 혹은 분기별로 20~30장 가량의 대표 사진을 골라 놓는 습관을 기르자. 

언론이나 외부 기관에서 사진 자료를 요구하는 상황에 대응하기도 쉽고, 내일 당장 발표가 잡히더라도 제대로 정리한 사진만 있으면 자료를 만들어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다.     






사진을 읽어보기



조직이나 활동을 대표하는 사진을 골라달라고 요청했을 때, 현수막을 들고 촬영된 단체 사진을 꼽는 경우가 많다. 결혼식 기념사진이나 국가대표 선수처럼 참여 구성원이 나란히 늘어선 사진이다. 현장의 마무리 의식처럼 촬영되는 이런 사진은 보고서에선 유용하게 사용했을지 몰라도 보는 이에게는 아무런 정보를 전달하지 못한다. 


셀카와 인증샷도 마찬가지다. SNS에서 타인의 셀카, 단체 인증샷을 자주 접하다 보니 거부감 없이 사용한다. 현장과 함께 자신을 담고 싶다는 마음에 촬영하는 경우도 많다. 즐거운 순간을 기록하는 유희이자 가벼운 기념사진으로 여기는 듯하다. 분명 촬영에 함께한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환기할 단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분리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정보와 정서를 전달하기 어렵다.

단체사진이 대표사진은 아닐지도


기념사진에서는 즐거워 보이는 낯선 타인들 외에 읽어낼 수 있는 정보가 없다. 실무자가 디자인에 사용할 사진을 고를 때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정보다. 우리의 활동과 상황을 전혀 모르는 제3자에게도 읽힐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사진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그 내용을 해석하게 된다. 사진에서 무엇이 읽히는지 판단하려면 구체적인 문장으로 적어 보는 것이 좋다. 


이때 사진에 어떤 정보가 담겨 있다고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진다. 생각나는 것을 글로 적어 보고, 사진에 제목을 달아보면 사진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이 더 명확해진다. 디자인은 글과 이미지를 결합하여 새로운 시각물로 만드는 과정이다. 사진에 제목을 지을 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보면 좋다.


첫째는 제목이 사진을 명료하게 보여 주는 방식이다. 사진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를 독자가 더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제목으로 표현하여 초점을 분명하게 해준다. 제목에 다 포함되지 않는 시각적 정보들은 사진을 풍성하게 보여 주고, 사진만으로는 모호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은 제목이 구체화 시켜주는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둘째는 제목과 사진이 다른 내용을 말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글과 사진이 각자 다른 내용으로 존재하면서 독특한 해석을 만들어 낸다. 이 차이가 재미나 의외성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과 제목의 관련성이 떨어지면 독자를 납득시키기 어려운 수사에 그칠 수도 있다. 


글과 이미지를 함께 배치할 때는 어떤 뉘앙스를 전할 것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인을 잘하려면 사진을 포함하여 자신이 다루려는 이미지와 그 위에 올릴 텍스트의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앞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이야기했지만 그 사이에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디자인하든 그것이 가능하려면 일차적으로 사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적절하게 해석한 다음에야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


단지 예쁘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대표 사진을 고르면 표현하려는 의도와는 어울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 사진에 별다른 의미가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호한 사진을 사용하면 어떠한 비유와 해석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물이 나온다. 디자인에 사용하기 좋은 사진을 고르는 판단의 첫 번째 기준은 사진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콘셉트가 선명한지, 즉 정보를 명확하게 담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사진을 어떻게 장식적, 상징적, 인상적으로 사용할지 판단한다. 디자인은 매번 새로움을 표현하려는 예술적인 유혹을 받기 마련이지만, 그것보다 상위의 기준은 정보 전달이다. 글과 사진이 명확한 상관관계를 구성하고 있는가. 이 점이 실무자나 디자이너 혹은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선명한 판단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어야 엉뚱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원고는 발간예정인 [실무자를 위한 디자인 수업]에 수록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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