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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 Sep 02. 2020

영롱한 하루치 기운


사람에게는 하루치 에너지가 있다.

일터에서는 하루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서로 기대하고 증명한다. 홀로 작업을 하면서도 하루에 기대하는 작업량이 있다. 의뢰받은 그림의 구상을 마쳤거나, 글의 초고를 한편 써냈거나, 밑그림 선을 완성했거나, 채색에 진척이 있었거나 하는 정도. 하루에 하나 정도를 진솔하게 잘 해내길 기대한다. 작업과 함께 여러 날들을 지내보니 내가 쓸 수 있는 하루치 에너지는 꽤나 균일했다. 시간으로 치면 5시간에서 7시간이며, 그 이상 책상을 맴돈다고 해서 더 좋은 창작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나는 이상적인 작업시간으로,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꼭 사수하는 편이다. 이때가 몸도 마음도 맑고 든든하기에 총명한 창작이 가능하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시간이 다를 테지만, 남들이 잠든 새벽을 깨어있던, 해 질 무렵부터 하루를 시작하던, 하루 중 가장 영롱한 시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창작자의 관건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쓸 수 있는 총명함, 영롱함, 혹은 혼이랄지 그 양은 동일하지 않을까.


다만 하루에 쓰게 되는 그 맑고 산뜻한 기운을 어디에 쓰는지로 삶은 나아간다. 하루에 한 가지 작업을 기대하는 나로서는, 일을 병행하며 과연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이따금 직장에 다니며 새벽에 글도 쓰고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누군가의 기사를 접하면, ‘저 의지는 보통이 아니리라’ 속으로 리스펙을 보낸다. 퇴근 이후에도 창작력을 끌어낸 체력과 의지는 정말 정말 대단한 것이다.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기운은 소중하기에 아끼고 싶으리라. 하지만 현실에 발 디딘 우리는 돈도 벌어야 하기에 창작과 일 두 가지를 병행하기도 한다. 하루의 기운, 하나의 자아를 두 개로 나누어 쓰며 잘해나가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친구 은배와 맥주를 마시며 이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었다. 은배는 일로 만난 사이인데, 생업은 실무자이지만 꾸준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쩐지 작업할 기분이 나지 않아. 분명히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있는데... 왜 다시 책상에 앉는 건 어려울까?."


나는 은배의 심정을 이해했다. 은배는 맥주 한잔을 시원하게 비우고 나서, 자신의 상태가 마치 분식집 식용유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아침에 노랗고 투명한 기름이 튀김기에 채워졌어. 오늘 나는 이 기름으로 아주 맛있는 야채튀김을 만들 거야! 그런 계획이 있었어. 하지만 손님이 들어와 돈가스를 주문한 거야. 돈을 벌기 위해 주문 들어온 고기를 튀겨 드렸지만, 한 번 튀겨져 버린 그 기름은 처음과 같은 기운을 잃고 탁해져 버린 느낌이랄까.”


“그래도 장사가 잘 되면 좋은 거 아니야?”  내가 위로를 시도해 보았지만, 은배의 식용유 비유는 계속 이어졌다.


“문제는 정말 주문이 밀려들어와 신나게 튀기고 돈이나 잘 벌면 모를까, 시간은 썼는데 벌이도 썩 시원찮은 상태로 장사가 끝나는 거야."


"그건... 그렇지"


"나의 하루치 기름을 온전히 연소하지도 못하고, 불순물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야. 체력은 남아있는데,, 뭔가 다시 야심 찬 작업을 할 기운은 사라진 기분. 그렇게 내 하루가 저무는 게 늘 아쉬워.”


나도 맥주를 들이키며 공감했다.

“역시, 사람에겐 그날 쓸 수 있는 하루치 기름이 있나 봐.”

“그치?, 작업을 하려면 영롱한 나의 기름을 지켜내야 하는데... 역시 그만둬야 하나.”

은배의 퇴사 고민에 우리는 조용히 맥주잔을 부딪힐 뿐이었다.   



창작자에게 작업시간 확보는 가장 큰 숙제이다. 어떤 것에도 침해받지 않는 영롱한 시간. 하지만 대부분 돈 버는 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시간을 원한다. 파트타임이나 프리랜서의 일이 자유롭다 한들, 마감과 약속한 시간에 쫓기는 건 마찬가지이다. 외부 미팅이나 마감이 도래하는 기간은 온전히 일에 맞추어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그런 날이 길어지면  '아, 내 작업해야 하는데'하며 중얼거린다.


아무리 시간이 주어져도 작업으로 건진 것 없이 끝나는 하루도 있다. 보이는 성과 없이 헛손질만 하다 책상을 떠나야 하는 날은 우울하다. 더 이상 탓할 존재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날은 SNS를 열어보지 않아야 한다. 타인의 빛나는 성취로 가득한 타임라인에서 떨어지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이렇게 빈손으로 끝나는 날은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으려 연습한다. 하루치의 기운을 헛되이 쓴거 같지만 그 헛손질이 쌓이고 숙성되어, 다른 날의 창작에 뿅 하고 이어진다. 불확실 하지만 이 연결감은 더 많은 하루들이 지나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헛손질의 시간도 작업의 긴 우회로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작업하는 시간이 소중한 이유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여 보낸 맑은 성취감 때문이다. 그런 시간은 자아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모아지는 기분이 든다. 육아를 시작 한 친구들이 절실히 원하는 시간도, 책이라도 한 장 온전히 집중해서 읽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 사람에겐 조금은 고독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모아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 시간과 기운을 다 소진하지 않고 어떻게 사수할 것인지. 현실에 발 디딘 우리가 맞이하는 매일의 미션이다. 하루가 소중하고, 내일도 모레도 그런 하루들이 이어질 수 있다면 그림도 차분히 늘어갈 거라 믿는 수밖에. 다시 은배의 튀김기름을 생각하며, 매우 낙관적인 창작 가이드를 적어본다.  


1. 새로 부어낸 영롱한 기름을 귀하게 생각하자.

2. 마음먹고 튀겨낸 요리가 내 마음 같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3. ‘뭐 내일은 더 잘 튀겨지겠지’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하자.

4. 내 최고의 튀김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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