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에는 내 생일과 입추가 걸려서 이내 여름의 끝을 기대하는데.
올해는 도통 계절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소란한 계절이 영원하리만큼.
새로 그리는 만화의 중간정산(?)을 해서 보내면서, '참 재미 없다'와 '참 힘들다'를 변명없이 느끼고 나서 짐을 꾸렸다. 목적지는 파주 출판단지. <사적인서점>에서 기획한 북스테이에 운이 좋게 선정되었다. 육아하는 작가에게 쉼을 선물하고 싶다는 파트너의 사연이 눈에 띈 덕분에.
<사적인서점>에 도착해서는 책방지기님과 책상담을 진행하였고, 나는 처음보는 분에게 작업에 대한 고민과 푸념을 주절주절 이야기 하였다. 처방받은 책은 <삶과 나이>이다. 이 책을 소개받으며 인상적으로 다가 온 단어는 '성년'이다. 내 청년이 지나가버린 것은 알고 있지만, 그 다음은 무엇인가.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소란하고 끝없이 팽창할거 같은 여름같은 청년이 지나가고 그 다음은 무엇인가.
뭐든 성취할 수 있을라 커져버린 마음은, 스스로의 한계를 많이 알아버려서 한김 빠져버렸고.
내일은 잘 알수없지만 어제의 관성으로 한 발씩 내딛고 있는 하루. 세상에 대한 호기심보다 스윽 보면 알거같은 권태로움이 더 크게 자리한 상태. 답은 알 수 없어서 어찌저찌 매일은 성실하게 유지해보는 일상.
아마도 그런 날의 연장에 있지 않았던가. 책과 함께 다가 온 '성년'이란 단어는 흩어진 삶의 테두리를 뭉근히 모아주는 말로 다가왔다.
그날 밤.
<퍼펙트데이즈>를 관람하며 도시에 고독히 살아가는 중년의 잔상이 포개졌다. 영화는 아날로그의 낭만과 노동의 성실함에 기대며 사는 한 남자를 보여주다가, 그의 삶도 뿌리채 흔들릴수 있는 도시위에 표류하고 있음을 불안한 시선으로 마무리 된다.
고요한 숙소에서 성년의 단어를 품고 잠을 자고 커피를 마시고 또 책을보고.
하루를 유지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의지하던 성실함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사유하며 비워내는 쉼으로 생일을 보낸 셈이다.
그리고 그새 알게 된다. 이러한 쉼 또한 가상의 조건임을.
11시 숙소 체크아웃, 기대와는 다른 맛의 식당, 언제든 타인에 의해 흩어지는 카페의 분위기, 모든 것은 빌려서 얻은 가상의 쾌적함과 낭만위에 있다. 다시 지난한 반복의 하루들로 돌아가서 소란하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이 '쉼표' 덕분에, 얽혀버린 문장과 생각들이 풀릴 수 있어서.
이런 쉼표같은 날을 달력에 미리 심어두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대해 주신 <사적인사점>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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