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식 공정과 한국식 공정의 차이
매년 11월 초 핀란드 국세청은 납세 정보를 공개한다.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같은 유명 인사는 물론 평소 궁금했던 동료의 연봉이나 얼마 전 차를 바꾼 이웃의 소득까지 알 수 있다. 물론 남이 나의 소득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동소득인지 자본소득인지도 나온다.
“나 빼고 다 잘 버네.”
국세청이 공개한 고소득자 명단을 보며 느끼는 감정 탓일까 핀란드 사람들은 이 날을 '질투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웃 나라 노르웨이, 스웨덴에도 같은 제도가 있다.
북유럽에서 부자는 세금뿐 아니라 벌금도 많이 낸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의 국가는 교통법규를 위반할 경우 운전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벌금을 매긴다. 일수벌금제라고 하는데 위반자의 일수 즉 하루 평균 소득 절반을 기준으로 위반 내용에 따라 매겨진 범칙금을 곱해서 계산한다. 속도위반의 경우 제한속도 대비 25km/h를 초과하면 위반자의 일 소득 절반에 12를 곱하는 식이다. 스파이더맨의 대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가 북유럽식 일수벌금제를 잘 설명하는 말이다.
벌금 최고 기록은 12억원이다. 2010년 한 스웨덴 사업가가 무려 시속 290km로 주행하다 잡혀 과속 벌금으로 1백만 달러를 냈다. 2002년 핀란드의 통신장비업체 노키아의 부사장이 시속 50km 구간에서 75km로 주행해 벌금으로 약1억8천만원을 낸 사례도 유명하다.
누진벌금제에 대한 찬반이야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에 앞서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인 ‘공정’의 관점에서 이런 북유럽식 기준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북유럽과 한국은 ‘공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다른 것 같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누구는 벌금으로 12억원을 내고, 누구는 120만원을 내는 것이 한국식 관점에서 공정하다고 여겨질까? ‘부자가 봉이냐’, ‘벌금 낼 돈도 없으면서 누가 과속 하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편 누군가에게는 120만원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큰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까짓 푼돈일 수도 있다. 성경 속 가난한 과부에게는 두 렙돈(1천원가량)이 전재산이지만 부자에게는 비웃음거리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재발 방지를 목표로 할 때 공정의 기준을 벌금의 액수에 두느냐, 벌금을 내는 이가 느낄 부담감에 두느냐에 따라 벌금 제도가 달라질 것이다.
똑같은 서비스에 다른 값을 내는 것은 공정한가? 스웨덴의 어린이집 비용은 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부모의 소득에 따라 일정액을 내기 때문이다. 같은 곳에서 같은 돌봄을 받지만 소득이 높은 집은 더 많이 낸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불공정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기여하는 것이 북유럽식 공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런 방식이 공정하다고 여겨질까?
세금을 내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기쁘다
10여 년째 핀란드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고있는 사람 중 하나인 게임회사 슈퍼셀 CEO 일카 파나넨의 인터뷰를 보았다. 매해 수백억원 가량을 개인소득세로 내왔으니 아까울 만도 한데 파나넨의 반응은 지극히 모범답안이었다. 국가의 창업 지원이 없었으면 슈퍼셀도 없었다고, 자신은 이미 사회에서 많은 것을 받았으며 자신의 성취를 통해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기쁘다고 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은 것이 개인적으로 만났던 북유럽의 공직자, 사업가, 평범한 직장인 모두 한결같이 말했다. 북유럽 전체에 비밀스러운 정신교육이 이뤄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한국과 북유럽의 인터뷰를 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성공한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말하고, 북유럽의 성공한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평범한지를 말한다. 우수한 교육을 받은 인재, 건강보험, 도로와 인터넷 연결망 등 모든 사람이 낸 세금으로 건설한 공공재와 사회기반 덕에 기업도 개인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충실하게 세금을 내 복지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북유럽식 공정이다.
복지를 가장 든든한 보험이라 여기며 소득이 적든 많든 모두가 정해진대로 기여하는 북유럽 시스템에서 모든 납세자는 납세액에 상관없이 평등하다. 대신 탈세는 사회의 기초를 흔드는 중범죄다. '나부터 잘살고 보자' 식의 각자도생보다는 나 역시 최악의 상황에 떨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공동 대비하는 보편복지에 합의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여러 가지 공약과 제도가 공정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소득이나 재산 상태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주는 것이 공정일까?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용적률을 대폭 올리고 각종 세율을 낮추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공정한가? 협력업체는 같은 일을 해도 적은 월급을 받고, 비정규직이 위험한 일을 떠맡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공정한 대한민국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공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