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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Mar 07. 2022

우크라이나의 선택,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

러시아와 유럽의 묵은 적대 관계와 힘없는 나라의 운명 

노르웨이 해안을 뒤덮은 군대, 가상의 적은 러시아


2018년 10월, 노르웨이 북쪽 해역이 각종 무기와 병력으로 뒤덮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합동군사훈련이었다. 5만여 병력,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정 65척, 전투기 250대, 장갑차 등 전투차량 1만 대가 투입됐다. 냉전 종식 이래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29개 나토 회원국에 중립국인 스웨덴·핀란드도 참여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북극해에 미군의 항공모함이 등장한 것은 30년 만이었다. ‘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 해안에 적군이 상륙했다’는 가정하에 이뤄진 훈련으로 가상의 적국은 러시아였다.

서방 30여개국이 연합해 러시아를 자극하는 대대적 군사훈련을 펼친 까닭은 무엇일까? 중립국으로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중외교를 펼쳐온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나토 군사훈련에 참여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냉전이 풀린 이후에도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는 편치 않았다.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 같은 굵직한 사건 말고도 크고 작은 외교분쟁, 유럽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뉴스를 추적해가면 러시아 자금줄이 있다는 탐사보도도 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대중매체에도 드러난다. 유럽의 범죄 영화나 소설, 시리즈물에 등장하는 조직범죄단 두목의 이름이 대부분 ~오프, ~스키, ~옌코로 끝나는 러시아계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감정은 우리로 치면 반일 또는 반중 정서와 비슷할 텐데 이쯤에 머물지 않고 군사적 대응까지 하게 된 데는 물론 돈 문제가 얽혀있다.


북극해를 둘러싼 이권 다툼, 

빙하 아래 잠들어 있던 지하자원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한때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속임수’라고 비난했지만 이제 기후변화가 과학적 사실이며 경제와 외교의 주요 변수라는 명제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유럽이 바로 그 현장이다. 지구온난화로 꽝꽝 얼었던 북극의 빙하가 녹아 지하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졌다. 빙하 아래 잠자고 있는 다량의 천연가스와 석유, 은, 구리, 다이아몬드에 이르는 광물자원 개발에 인접국인 러시아, 미국, 캐나다, 영국,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발 빠르게 시추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자원이 다가 아니다. 빙하가 녹아 전에는 쇄빙선 없이 지날 수 없던 곳에 뱃길이 열려 북극해항로의 운항 가능성이 커졌다. 북극해항로를 이용하면 유럽에서 부산항까지 기존의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경로에 비해 이동시간이 30%, 많게는 50%까지 단축된다고 한다. 러시아가 북극해 인근에 핵잠수함까지 배치해가며 군사기지를 새로 구축한 데는, 노르웨이가 자국 영토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중립국인 스웨덴·핀란드가 나토 연합군사훈련에 참여한 데는 북극지역의 이권을 둘러싼 서방 대 러시아의 힘겨루기라는 뒷배경이 있는 것이다.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북유럽이 가장 먼저 나선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과거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하는 푸틴의 욕망이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러시아를 지켜보는 중국의 야욕

한편 전 세계와 등지며 러시아를 지원하고 나선 중국의 속내가 궁금하다. 역사를 들먹이며 우크라이나를 되찾겠다는 러시아와, 대만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이 겹쳐 보이는 건 착각일까?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면 군사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며 협박하는 러시아를 보며 한·미 동맹에 노골적 불쾌감을 표시하는 중국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중국은 러시아의 이번 침공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전직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까닭

이참에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 이야기도 해야겠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각국은 러시아와 맞물린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때 젤렌스키는 전장의 한복판에 남아 “도망갈 수단 대신 탄약을 달라”며 항전을 외쳤다. 각국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고 SNS를 통해 지원을 호소했다. 실제로 이후 국제여론이 바뀌면서 앞다퉈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고 대러시아 제재가 강화됐다. 

젤렌스키는 코미디언 시절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는 대통령을 연기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었다. 많은 이가 그를 두고 일천한 경력의 전직 코미디언이라며 깎아내렸지만 말과 태도로 대중을 위로하며 고양하는 능력은 코미디언 경력에서 나온 것일 테다.


과자회사 사장 출신 억만장자 대통령 vs. 부패와 싸우는 시트콤 속 대통령


혹자는 "지도자의 위기관리 능력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이라고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을 젤렌스키에게 돌리지만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다. 지난 우크라이나 대선에는 두 전직 대통령이 맞붙었다. 진짜 전직 대통령과 코미디 프로 속 대통령, 과자회사 회장이었던 억만장자 출신 전임 대통령 포로셴코 대 시트콤에서나마 희망을 주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의 부패는 심각한 상황이었고 유권자 모두 참 뽑을 사람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갖고 있는 패 중에 차악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포로셴코가 재임 중에 유령회사를 통해 은닉재산을 형성했다는 파나마페이퍼가 공개되면서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부패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그나마 새로운 인물인 젤렌스키를 뽑았을 뿐 그걸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가진 선택지 중에선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젤렌스키는 전직 대통령 포로셴코를 큰 표 차로 이기고 당선했다. 하지만 젤렌스키가 취하고 있는 나토나 EU, 대러시아 정책은 포로셴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에게서 독립, 크림반도 되찾기, 친 유럽, 나토 가입으로 동맹 확보... 젤렌스키에게 과거의 연장선인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책임 지우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대통령이 외교에 미치는 영향

어느 나라도 이제 자국의 이익이 없다면 명분이나 이념으로 전쟁에 뛰어들지 않는다. 남의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자국에 피해가 없다면 그저 현상황을 유지하게 둘뿐이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를 그대로 둔 세계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자국민의 안전을 제일로 여겨야 하는 외교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영역이니 각국은 각국대로 그 몫을 다한 것이다. 

외교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영역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주어진 대본만 읽는 수준을 넘어 상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각국의 정상은 정상 대 정상으로 만나지만 동시에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기에 개인의 매력 역시 큰 역할을 하며 이는 국익으로 이어진다. 크림반도 병합 때도 전 세계가 이 정도로 반응하진 않았다. 그나마 젤렌스키였기 때문에 국제 여론을 움직였던 것인지 모른다. 거리에서 평화를 외치는 여론을 무시할 수 있는 정부는 없으니 말이다. 


정치의 핵심이 상대의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과정일진대, 그렇다면 혼탁한 국내 정치와 불안정한 국제 정세 가운데 젤렌스키를 선택한 우크라이나 국민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밤 스웨덴에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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