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민주당, 화요일은 국힘당, 수요일은 정의당
알메달렌 주간 소식입니다.
북유럽 하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가 정치인에 대한 이미지 일 것입니다. 자전거에 백팩을 타고 출근한다든지 비서도 없고 일 열심히 하고, 부패가 없는 (애들 밥도 안 주는데 국회의원이라고 뭘 주겠습니까) 탈권위 청렴 정치문화 같은 이미지 말이지요.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는 탈권위와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스웨덴 정치문화의 상징 같은 행사입니다.
시작은 1968년 여름이었습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섬이자 중세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는 휴양지인 고틀란드섬에 전 스웨덴 수상이던 올로프 팔메 가족의 여름 별장이 있습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팔메는 여름휴가차 별장에 와있었는데 유명한 정치인이 왔다는 소식에 현지 주민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팔메는 장을 보고 오던 길 영수증에 간단히 메모를 해서 트럭 위에 올라가 연설을 했습니다. 고틀란드의 수도 뷔스뷔의 한가운데 있는 알메달렌 공원에서요.
정책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1968년이었던 만큼 미국의 하노이 폭격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연설을 듣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여름 별장이 고틀란드에 있는 관계로 매년 여름 이곳을 찾은 팔메는 총리가 된 이후에도 매년 고틀란드를 찾아 사람들을 만나며 연설을 하며 당의 정책을 전했습니다.
팔메의 연설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또 사민당 내 주요 인물이 찾아와 소통을 하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낀 타 정당 정치인들도 알메달렌으로 찾아와 연설에 가세했다. 이들은 연설을 통해 저마다 정당의 이념과 활동상을 소개하며 지지를 호소하거나 정치적 사안으로 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사회민주당 외 스웨덴의 다른 정당도 알메달렌에서의 자유 연설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1982년부터는 8개 정당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이후 정당뿐 아니라 시민단체, 비영리단체, 이익단체, 언론, 노동자, 학생 등 참여 범위가 확대되자 고틀란드 지자체가 아예 1994년 알메달렌 주간(Almedalen week)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 조직화자 공식적 행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그리하여 매년 여름, 6월 말이나~7월 초 사이 의회에 진출한 정당이 모두 참여해 각 당이 하루씩 얻어 당의 정책을 소개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 알메달렌 주간은 벌써 5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행사가 되었습니다. 의회에 진출한 정당과 정치인, 각계각층 인사, 시민단체와 비영리단체, 연구소, 언론, 기업,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부스를 세워 사람들을 만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민주주의의 축제가 되었고, 스웨덴의 의원들은 알메달렌이 끝난 이후부터 공식 휴가가 시작됩니다.
현재 스웨덴 의회에는 8개의 정당이 진출해 있는데 각 정당은 제비뽑기로 날자를 뽑은 후 유권자들에게 저마다의 정책과 비전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고 소통합니다. 유권자는 자유롭게 각 당의 주요 인사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의견을 나누며 공론의 장으로 삼기도 합니다. 보통 8일간 5000여 개의 행사가 벌어지고 작은 섬 고틀란드에 10만여 명이 방문한다고 하니 지역경제에도 크나큰 도움이 되는 반가운 행사인 셈입니다. 알메달렌 기간에는 숙소도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될 정도입니다.
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는데 사민당의 대표가 화폐 없는 사회(편리함과 투명한 세금, 소득 관리 등 여러 장점에 대해 설명하며 여러 정책과 추진 안을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6살짜리 꼬마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 같은 어린이는 카드를 만들 수 없는데 그럼 어떻게 사탕을 사나요?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도 카드가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현금을 완전히 없애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당시 총리였던 정치인은 "물론 현금 사용과 병행하게 될 것이고 기술 소외 계층에 대해 더 열심히 분석해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재작년에는 거르고 작년에는 온라인으로만 진행했다가 올해 드디어 알메달렌 주간이 열렸습니다. 9월에 총선이 있다 보니 올해 각 정당은 더 적극적으로 정책 홍보에 나섰는데요 각 당이 집중하는 주요 어젠다는 나토 가입과 안보, 기후위기, 에너지 정책, 중산층 확대, 공공의료와 교육의 질 제고, 사립학교의 이익 추구 금지 등이었습니다. 한편 알메달렌 4일 차이던 지난 수요일 현장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정책보다는 사건 뉴스가 더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지자체가 알메달렌과 비슷한 시도를 했는데 아직까지 뿌리내린 행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북유럽에서 공부하면서 또 북유럽 기업과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토론 또는 회의를 정말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한국식 토론과 차이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어요. 북유럽식 토론의 목적은 해답을 찾는 것이지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재미도 없고 엄청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어떻든 해답을 찾아야 끝나니 서로 소모적인 공격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찾도록 합의하게 되는 것이지요. 팔메가 "남들은 우리 보고 달팽이 같다고 하겠지만 나중에 보면 가장 멀리 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정치뉴스를 보며 화내는 대신 생산적인 고민을 하고 싶습니다.
정치가 축제가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