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1.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기사를 읽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빚이 소득보다 6배 빨리 늘었다…‘팬데믹’이 20대에 남긴 상흔
https://www.hani.co.kr/arti/economy/heri_review/1096501.html
코로나 전후로 모든 연령대의 부채가 늘었습니다. 그중 20대는 빚의 증가폭이 소득의 6배,, 그 빚의 내역이 코인투자일 수도 갭투자일 수도 실직이나 구직활동 기간의 생계비용일 수도 있겠지요.
채무자가 있으면 채권자가 있습니다. 모든 세대가 빚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불평등이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두고 천박한 자본주의라고들 합니다. 생산성 증대를 위한 노력이나, 좋은 일자리를 늘려 사회 구성원의 안녕을 도모하기보다 오직 부를 늘리려고 하는 지대추구(Rent seeking)가 경제논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하면 이 제품/서비스로 인류를 이롭게 할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수 있을까'가 목적인, 건물주가 모든 세대의 목표인 시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이미 10년 전에 피케티가 목침처럼 두꺼운 책을 들고 나와 문제제기 했던 현상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는 가장 부유한 계층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추출한다고 했습니다. 중산층과 빈곤층에게서 쥐어 짜낸다는 편이 더 적절한 번역이 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효율적인 경제체제라는 것은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는 전제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노력하고 성실히 일하면 원하는 수준의 삶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 바탕 철학이고 체제를 지탱하는 이유이자 동기입니다. 건강한 자본주의의 결과는 다이아몬드형의 경제분포 하지만 불평등이 극심한 지금은 중산층이 사라진 모래시계 모양으로 변했습니다.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어려워지고 기존의 중산층은 운이 좋으면 부유층에 편입되고, 그렇지 않으면 빈곤층으로 떨어집니다.
자본주의가 보장했던 기회의 평등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남이야 가난해지건 말건 나만 부자가 되면 괜찮은 것일까요?
과거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포드의 창립자인 헨리 포드가 자동차노조 위원장인 월터 로더를 새 공장에 초대했습니다.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 시설을 갖춘 공장을 함께 둘러보며 "로봇은 노조 회비를 낼 수 없으니 어떻게 하나?"라고 묻자 로더는 "그럼 자동차는 누가 사나? 로봇이 사나?"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요즘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요? 수백억짜리 건물을 턱턱 샀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한편 거리를 걷다 보면 ‘공실’, ‘임대’ 등의 표지도 그만큼 자주 보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물건을 사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본으로 할 수 있는 궁극의 소비는 부동산이고 이를 통해 지대추구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임대료를 부담할 수 있는 중산층이 무너지면? 상위에 있는 사람들의 부도 더 이상 증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자와 세금부담으로 부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 사이 빈곤층은 고사하게 되고, 모래시계의 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래가 아래로 쏟아지듯 서서히 추락하게 됩니다.
소비와 생산은 천천히 정체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늘어납니다. 사회는 불안해지고 개인은 불행해지고, 결국은 내부에서 체제를 무너뜨리는 세력이 등장하거나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사회일까요?
우리의 모래시계는 언제까지 유효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