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의 친구가 트럼프의 아빠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재미있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전보다 더 노련하게 세상을 절망으로 채울 것이라고 썼는데요. 내년에 가장 위험한 사람이 트럼프라면, 작년에 가장 위험했던 사람은 푸틴.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아닐까요?
무려 16년간 이스라엘을 이끌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이 사태까지 오도록 만든 핵심인물이니까요. +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사법개혁까지
벤자민 비비 네타냐후는 1949년에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에 독립국을 선언하며 생긴 나라인데,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첫 번째 수상입니다. 네타냐후의 아버지는 역사학자로 유대역사를 주로 연구했고, 할아버지는 랍비(유대교의 율법학자이자 선생님)이자 시온주의자(조상의 땅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운동을 펼치던 민족주자)였습니다.
원래 유대인은 성이 없잖아요. 디아스포라였던 네타냐후의 아버지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밀레이코브스키“라는 폴란드식 성이 있었는데 이스라엘로 건너오면서 ”네타냐후“라는 이스라엘식 성으로 바꿨습니다. 네타냐후의 뜻은 “주님이 주셨다.:라는 뜻이라고 해요.
네타냐후는 둘째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고, 선생님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벤자민 네타냐후는 교수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과 이스라엘을 오가며 자랐고 주로 필라델피아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축구, 체스 그리고 토론 클럽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네타냐후는 언론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요.
이후 196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8살에 이스라엘방위군에 입대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건너왔습니다. 이후 5년간 정예부대 전투병으로 여러 전투와 작전에 참여했고 그 가운데서도 두각을 나타내, 이집트 군에 대항해 수에즈운하 기습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1972년 구조 작전 중에 어깨에 총상을 입은 후 명예전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MIT와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경영컨설팅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 1976년, 그가 스물일곱살이 되었을 때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 생겼는데, 형인 요나탄 네타냐후가 인질 구조 작전 중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됩니다. 작전 지휘관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무려 100명의 인질을 구조하는 데 성공하고 스스로는 목숨을 잃은 것이지요. 요나탄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추앙되었고, 벤자민 네타냐후는 막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상태였는데요, 일 말고도 미국에서 여러 미디어에 팔레스타인을 비판하며 이스라엘의 입장을 전하는 역할을 하다가 이스라엘로 건너와 형의 이름을 딴 요나탄 네타냐후 반 테러 기구를 설립해 활동하며 정치경력을 시작합니다.
가족사와 이력만 들어도 여기저기서 인재영입 하고 싶어 할 것 같은 인물이지요. 더구나 신생국인 이스라엘에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보니 미국에서 자라고 명문대를 나온 벤자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인재였죠. 그런 이유로 초기에 외교관으로 국제 사회에 이스라엘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을 맡았고, 이후에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계로 넘어오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네타냐후가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친구를 사귀는데 프레드 트럼프, 바로 도널드 트럼프의 부친입니다. 이쯤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왜 취임한 이후 첫 순방지로 이스라엘을 택했는지, 아랍세계의 공분을 사가면서까지 팔레스타인과 공동 점유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선포해했는지 실마리가 잡히지요. 미국의 공화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클린턴과 오바마의 중동정책을 비난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가지구 내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넓히고,
봉쇄하며 압박하고,
이스라엘 내부에서 지지율이 떨어지면 가자지구 공습... 이것의 반복입니다.
집권했을 때나 야당 대표로 있을 때나 네타냐후는 끊임없이 팔레스타인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며 각을 세우고, 국제사회가 중재하며 해법으로 내놓은 오슬로협약,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나라로 공존하는 안에 반대해 왔습니다. 경제관은 보수적 극렬반노조 친재벌 기조이고, 갖가지 부패혐의, 사치, 부인과 아들의 갑질 논란 등으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전쟁 중에도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네타냐후가 주도한 사법개혁에 대한 반대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개인의 욕심과 관련이 있는데요, 네타냐후는 여러 부패혐의로 불체포 특권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 권력에 대한 욕심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타냐후가 지난해 총리가 되자마자 주도한 '사법 개혁‘ 그러니까 법원의 판결을 국회가 무효화할 수 있도록 하는 건데요,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법원/헌법재판소에서 총리 탄핵 판결 또는 검찰총장의 총리 직무 부적합 결정을 내려도 의회에서 무력화시킬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5년 전 헌법재판소가 선고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라는 결정문을 기억하실 텐데, 이스라엘에서는 이제 네타냐후 총리가 어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사법부가 탄핵 결정을 내려도 총리직에서 끌어내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사법 개혁”이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것 같은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3권 분립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결정인데도 강행 처리를 해, 올초부터 이스라엘 내에서도 반대 시위가 거셌습니다. 이런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어찌 보면 늘 해오던 대로 위기의 돌파구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압박을 늘렸고, 지난 9월 하마스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자 옳다구나 하고 대 터러전을 선포하며 잔인한 진압에 나선 것이지요. 미국의 승인 없이도 공격을 감행하고 더 이상 바이든의 말도 듣지 않고요.
대부분의 현대 국가는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리더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제한하기보다 주어진 것 이상으로 행사하는 경우 더욱 그런데요, 그래서 한 나라의 지도자, 그 개인의 이력을 보면 그 나라의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요.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자의 이력과 됨됨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