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사망자 중 40%가 어린이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10월 31일 기준 이스라엘 쪽 사망자가 1,410명,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8,000명으로 알려졌습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사망자 중 3,500명이 어린이라고 합니다. 일주일 사이 팔레스타인 쪽 사망자가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이 있는데 사망자 중에 어린이가 40%에 이릅니다.
일 년이 넘게 이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쪽 사망자가 9,800명인데, 그중 어린이가 550명가량입니다. 사망자 중 어린이 비율이 6%. 그에 비해 이번 전쟁에 어린이 사망자가 40%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이유는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 중 20세 미만 인구가 거의 50%에 이를 정도로 젊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가자지구 인구가 2백만, 웨스트뱅크라 불리는 서안지구 인구가 3백만 가량 되는데, 양 쪽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체의 2021년 기준 출산율이 3.4, 그중에서도 가자지구는 3.9에 이를 정도로 높습니다. 옆 나라 이스라엘이 2.9, 요르단, 이집트도 출산율이 높은 편인데 가자지구는 그에 비해서도 훨씬 높습니다.
보통 기대수명이 짧거나, 가난하거나,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은 곳일수록 출산율이 높습니다. 출산율이 높은 아프리카가 4 정도입니다. 중동 몇몇 국가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보장되지 않아 교육 수준이 낮은 곳도 있고요.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인당 소득도 연평균 $4,600 정도라 이집트나 요르단 보다 높아요. 중학교 입학 비율도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더 높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높은 출산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이유가 서글픕니다. 높은 출산율이 바로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야세르 아라파트라는 이름 들어보셨을 거예요. 과거 PLO 팔레스타인을 이끌던 초대 의장이었는데, 이 사람이 주창하던 것이 “요람의 전쟁”이라고 팔레스타인의 인구를 늘려서 힘과 정체성을 기르자고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인구가 930만 명 정도라 팔레스타인의 두 배 정도거든요. 인구를 늘려 체급을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고 한 거죠. 실제로 1999 to 2003까지 가자지구의 출산율이 5.8이었습니다.
아라파트가 사망한 이후, 팔레스타인의 출산율도 점차 내려갔습니다. 하마스를 테러리스트 조직이라고 규정하는 나라도 있지만, 어떻든 팔레스타인 안에서는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투쟁을 주도하는 하나의 정당이고 선거를 통해 가자지구에서 집권하게 된 것이니 합법적인 조직입니다. 하마스는 아라파트의 정책을 이어받아 2007년 집권 이후부터 출산장려를 외쳐왔습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출산율이 5.8, 이제 20년이 더 지났습니다. 중동 지역은 결혼을 일찍 하다 보니 그때 태어난 젊은이들이 이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기 시작하는 무렵이 된 것입니다. 지금 인구의 주축이 가자지구의 베이비붐 세대인 것입니다. 현재 인구 구성이 이렇다 보니 이번 전쟁에서 사망자 중 어린아이가 다수 포함되는 비극이 발생한 겁니다.
지금 주변 아랍 국가는 물론 유럽, 남미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반 이스라엘 정서가 커지고, 팔메스타인 연대 시위가 벌어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10월 27일 유엔 회원국 121개국의 찬성으로 휴전을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날인 28일 이스라엘방위군은 약 10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하 목표물 150곳을 공격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강도의 폭격으로 일주일 새 4,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자의 40%가 어린이, 거기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해 버리면 어디서도 생필품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같은 상황입니다.
그나마 바이든이 방문한 이후 구호물품이 들어가게 됐지만 품목도 양도 굉장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지난 며칠의 폭격으로 가자지구 곳곳이 폐허가 되어 식량은 물론, 전기도, 물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현지 기자가 올린 블로그를 보면 17명이 함께 모여 대피하고 있고, 남자들이 며칠에 한 번씩 5km를 걸어 통에 물을 받아온다고 합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건물의 잔해를 밟고 지나가는데 그 안에 시신이 보인다고 합니다. 전염병의 위험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주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블로그에 “가자지구 폭격으로 이미 팔레스타인인 민간인 수천 명이 숨졌고 이 중 많은 이가 어린이”라며, "민간인에게 식량과 물, 전기를 차단한 이스라엘 정부의 결정은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평화를 위협하는 빌미가 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고 터키 등 주변국에서도 이스라엘을 전범국이라며 강하게 규탄하고 있습니다. 반 이스라엘 정서와 함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전 유럽으로 번지고 있습니다만, 이스라엘은 국제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손자병법에 보면 적군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퇴로를 열어 주고, 궁지에 몰린 적은 최후까지 공격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은 탈무드만 봐서 모르는 모양입니다.
PS 이스라엘-팔레스타인전과는 별도로 미국은 시리아에 있는 이란연계 세력기지에 추가 공습을 경고했습니다. 현재 미국은 아랍지역에 자국민 대피령을 내렸고, 독일은 필요한 경우 자국민 대피를 돕기 위해 가까운 키프로스에 1000명의 군인을 배치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쟁이 확대되어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 섞인 전망이... 미국에 전쟁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말은 몇 년째 있어왔지만.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