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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Sep 04. 2017

레고|LEGO의 열 가지 원칙

난 이제 더이상 그냥 장난감이 아니에요

레고(LEGO)는 덴마크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다. 레고의 대표 제품은 플라스틱 블록 장난감이다. 장난감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레고를 갖고 노는 어른도 많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수십만 원을 들여 구매하고, 희귀한 모델은 웃돈을 얹어 사기도 한다. 레고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레고아트까지 나왔다. 레고사 전체 판매 수익의 10%가 어른용 레고에서 나온다고 한다. 물론 어린이용 레고를 사는 돈도 어른 주머니에서 나온다.

#1. 레고의 역사

레고는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 가문 소유 기업이다. 20세기 초 대공황의 먹구름은 덴마크의 시골 빌룬드에 있는 목수에게도 드리워졌다. 하지만 목수는 이렇게 생각했다.

시대가 암울할수록 사람들은 장난감을 원하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불경기에는 생필품을 제외한 물품의 소비는 오히려 줄지 않나 생각할 법도 한데 실제로 불황에 장난감 매출은 증가한다고 한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과거에 대한 향수가 커져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퇴행 현상’이 는다고. 마케팅 전문가도 놀랄 혜안이자 콜럼버스가 흐뭇해할 낙천적 역발상의 대가다.


솜씨 좋은 목수였던 결단력의 사나이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Ole Kirk Christiansen)은 1932년 목공소를 접고 나무를 깎아 장난감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장난감 공장으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크리스텐센 장난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레고를 창업한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1934, 출처: lego.com)


레고, 전설의 시작 

사업이 조금씩 자리가 잡히자 크리스텐센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뭔가 제대로 된 ‘브랜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역지에 집에서 담근 포도주 한 병을 상품으로 내걸고 장난감 회사의 이름을 공모했다. 거기서 당선된 이름이 레고(LEGO)다. ‘잘 놀다’라는 뜻의 덴마크어 ‘LEG GODT’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냐고? 바로 크리스텐센 본인이 낸 아이디어다. 공모전 주최자가 우승자가 된 다소 민망한 상황에서도 크리스텐센은 “역시 내 아이디어가 최고야!” 감탄하며 상품인 와인으로 축배를 들었다나 뭐라나.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라틴어로는 ‘레고’가 ‘조립하다’라는 뜻이었다고. 크리스텐센은 무릎을 치며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초기의 레고 공장에는 7명이 옹기종기 앉아 나무 장난감을 만들었다. 깐깐한 성격의 올레 크리스텐센은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야 괜찮다는 소리 듣는다’며 직원을 닦달했다. 그 덕에 레고는 품질 좋은 장난감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최초의 생산라인 (1932, 출처: lego.com)


올레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중 셋째인 고트프레드는 이미 12살부터 생산라인에서 일하며 직접 장난감 디자인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고는 목각 비행기, 동물, 곰돌이 인형까지 닥치는 대로 모든 종류의 장난감을 생산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 경영자가 된 고트프레드는 1963년 경영 혁신을 위해 ‘LEGO(잘놀기)의 열 가지 원칙’을 공표했다. 앞으로 레고는 이 열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하겠다고 했다.


‘LEGO 생산의 열 가지 원칙’

1. 놀이의 무한한 확장성

2. 남녀 모두 즐기는 놀이

3. 모든 연령대가 즐기는 놀이

4. 일 년 내내 갖고 놀기

5. 건강하고 조용히 놀기

6. 오래 갖고 놀기

7. 발전, 상상력, 창의력을 키워줄 것

8. 레고가 많아질수록 가치가 커질 것

9. 추가 구매가 가능할 것

10. 작은 것 하나하나 최고의 품질을 구현할 것



놀이의 무한한 확장성

이럴 수가! 일 년 내내 조용히, 그것도 오래 갖고 논다고? 이것은 모든 부모가 원하는 꿈의 장난감이 아닌가? 이렇게만 된다면야 우리 부모님께도 사드리겠다.


그래 블록이야! 

고트프레드는 레고의 모든 제품을 하나하나 살폈다. 꼼꼼히 봐 가며 열 가지 원칙에 가장 적합한 제품을 골랐다. 그게 바로 당시에는 별 인기 없던 블록 장난감이다. 고트프레드는 블록 장난감이야말로 자신의 발표한 열 가지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제품이라 판단했다.



신임 경영자는 경영학의 고전인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펴는 동시에 글로벌 마케팅에 박차를 가했다. 얼마 안 가 레고는 덴마크를 넘어 유럽시장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화재로 공장을 한번 태워 먹은 후, 1947년부터는 기존의 나무 블록과 함께 플라스틱 제품도 함께 생산했다. 그 덕에 생산 물량이 크게 늘었다. 지금은 레고가 없는 아이를 찾기 어렵다. 레고는 아이들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 목록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1인당 86조각의 레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레고랜드 (1968, 출처: lego.com)


1989년 레고 블록 제작의 특허권이 종료됐다. 블록 시장의 유일한 공급자였던 레고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속속 등장했다. 중국의 코코 토이, 캐나다의 메가블록 같은 경쟁사는 한층 싼 값에 비슷한 제품을 내고 있다. 그래도 레고의 아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품질에서는 한치의 타협도 없다는 창업주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고트프레드가 주창한 ‘레고의 10가지 원칙’이 말하듯 레고는 철학이 담긴 장난감이다. 레고는 그냥 한번 갖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다. 만드는 사람의 상상력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레고를 활용해 예술 작품까지 만든다. 강한 브랜드를 중심으로 레고는 영화, 게임, 레고랜드 테마파크, 아동복, 경영 컨설팅까지 사업의 가지를 넓히고 있다.


지난 10년간 레고의 연평균 매출은 무려 5조, 이익률은 25%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몇년은 하향세라 2017년 9월, 직원의 8%(약1400명)를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레고는 가족 소유 기업이다. 매출이 떨어진다고 해도 상장만 한다면 주식시장에 엄청난 반응을 몰고 올 것이다. 다만 자회사 중 레고랜드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Merlin Entertainments만 상장중이다. 레고랜드는 덴마크, 영국, 미국, 일본 등 8개국에 있다. 춘천 레고랜드 개발이 진행중이었으나 부지에서 선사시대부터 철기, 삼국, 고려시대까지 유물이 발굴되면서 여러가지 추가 논의가 진행되다가 말다가 아직도 교착상태다.


레고, 잠재 고객을 위한 최고의 마케팅 파트너


레고는 강력한 브랜드와 충성도 높은 고객, 세계적 판로 덕에 공동마케팅 최고의 파트너로 꼽힌다. 레고의 중장비 세트에는 다국적 에너지 기업인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의 로고가 찍혀나간다. 원유 시추를 위해 사정없이 땅에 구멍을 내는 통에 환경 운동 단체의 단골 공격 대상인 기업이다.

'쉘이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을 오염시키고 있다', 그린피스가 제작한 레고 청원 영상 캡쳐

환경 운동계의 큰언니 그린피스는 로열 더치 쉘의 노란 조개 모양 로고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장난감에 찍혀 나가는 걸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레고는 환경단체의 반발에 못이겨 쉘과 맺은 기존 계약이 종료되면 더는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료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설마 영구 계약인 건 아니겠지?  


아래는 레고와 다국적 에너지 기업 쉘의 관계 청산을 끌어낸 그린피스의 캠페인 동영상이다. 레고 블록을 이용해 쉘이 북극에 초래하는 환경 오염을 비판하고, 쉘과 레고의 파트너십 청산을 요구한다. 현재(’17년 7월 4일) 조회 수 800만을 넘겼다. (편집자)


신제품 출시 때마다 라이선싱(특허사용계약)으로 특정 주제 세트를 내는 것도 레고가 자주 쓰는 공동 마케팅 기법이다. 스타워즈, 배트맨, 마인크라프트, 인디애나 존스 등은 출시와 동시에 매진 기록을 세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나는 해리포터 레고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레고는 금호타이어나 미셸린을 앞지르는 타이어 제조사이기도 하다. 레고 제품에 들어가는 자동차용 미니 타이어를 매년 3억 개가 넘게 생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p.s.

이 글은 북유럽연구소의 책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B컷(책에 포함되지 않은 원고) 중 하나입니다.


북유럽연구소 소장 @북극여우 입니다.

노르웨이, 한국, 스웨덴에서 공부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 뜻을 품고 유학길에 올라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에서 지속 가능 발전을 전공했습니다. 만학도로 없는 기력을 발휘해 재학 중 웁살라 대학교 대표로 세계 학생환경총회에 참가했으며 웁살라 지속 가능 발전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스웨덴에 있는 동안 모 일간지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습니다. 현재 북유럽 관련 연구와 기고, 강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북유럽, 지속 가능성, 양극화, 사회 통합, 복지국가, 자살, 예술, 철학 etc. 저서로는『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지도자들』,『라곰』(번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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