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유럽연구소 Aug 29. 2017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해피 앤딩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바나나를 먹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제 친구들이 바나나 불매운동을 시작했던 이유를 들려드리겠습니다.


2009년 프레드릭 게르텐이라는 스웨덴의 언론인이자 영화감독이 [바나나스!*](Banana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습니다.


영화 속에는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열대과일 제조유통사로 유명한 돌 푸드 컴퍼니(Dole Food Company)가 소유한 니카라과의 바나나 농장이 등장합니다. 제초제 과다 살포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임이 되거나 후유증에 시달리지만,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Bananas!* (2009) 포스터


[바나나스!*]는 LA 영화제 경쟁작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러자 돌(Dole) 사는 영화제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상영이 되네 마네 하다 결국 경쟁작에서는 빠지고 ‘다큐 제작과 책임’이라는 주제 아래 토론을 하는 이벤트로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사회자가 상영 전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거짓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공지를 한 후 상영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대굴욕을 당한 후 감독은 이후 스웨덴에 돌아와 몇몇 매체와 인터뷰를 합니다. 그러자 돌(Dole) 사는 엄청난 액수의 명예훼손 소송을 겁니다. 감독뿐 아니라 감독과 가까운 동료들도 각기 다른 내용으로 고소를 당하게 됩니다. 프레드릭을 만나 인터뷰한 사람, 시사회 참가자, 서명운동에 동참한 모든 사람이 돌(Dole) 사로부터 협박성 메일을 받습니다.


돌(Dole)의 의도, ‘철저히 밟아 주겠어’  

프레드릭은 가장 가까운 동료에게 말합니다.

“나를 떠나도 괜찮아…”

그렇게 정말 거미줄로 옥죄어오듯 숨통을 조여옵니다. 프레드릭을 취재했다는 이유로 돌(Dole) 사 측의 연락을 받은 한 기자는 “스웨덴의 지역 방송에 그것도 아주 잠깐 나왔는데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한 건지 놀랍고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돌(Dole) 사에서 그렇게 집요하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건으로 나 건드리지 마. 그럼 이 사람처럼 되는 거야. 철저히 밟아 주겠어.’

경고지요. 돌(Dole)의 입장에서 보자면 애초에 문제 제기의 싹을 잘라내기 위한 본보기이자 더 이상의 소송을 막기 위한 투자였던 셈입니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 (Big Boys Gone Bananas!*, 2011)


스웨덴에는 막스(Max)라는 햄버거 체인이 있습니다. 우리의 롯데리아와 비슷한데, 맥도날드보다 잘 나가고 버거킹보다 비쌉니다.

친환경 개념을 내세우는 나름 고급 햄버거 체인입니다. 메뉴 옆에 칼로리가 아닌 탄소발생량이 쓰여 있을 정도입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도 많고, 친한 친구가 좋아해서 스웨덴에 거주하는 동안 저도 가끔 갔던 그런 곳입니다.



어느날 딱 봐도 오타쿠 같은 한 동네 청년(알폰소 알렌데, 블로거)이 막스에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가 선택 메뉴로 나오는 과일이 돌(Dole) 사의 제품인 걸 발견하고는 매니저에게 묻습니다.


아니 환경과 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막스에서 어떻게 비윤리적이며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돌(Dole) 사의 제품을 파는 거죠?"


그리고 집에 가서는 막스의 홈페이지에 같은 내용의 글을 남깁니다.

얼마 후 막스의 CEO에게 답장이 옵니다.


1. 우리는 돌이 그런 문제에 휘말려 있는 걸 정말 몰랐다.
2. 미국 본사에 관련한 자료를 요청했으나 아무 답을 듣지 못했다.
3. 그래서 막스는 돌(Dole) 사의 제품을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막스가 돌을 보이콧하다”

다음날 신문 헤드라인입니다. 프레드릭과 돌사의 싸움은 이제 문화면이 아닌 경제면으로 옮겨갑니다.

여론은 급물살을 탔고 어느 날 프레드릭은 사민당 소속의 지역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한 통 받습니다.


“이 영화를 국회에서 상영하면 어떨까요?”


국회의원의 이름을 보니 남미 출신 이민자였습니다. 아마 그래서 이 문제가 더 와 닿았겠거니 짐작해봅니다.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암튼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영화를 본 후 열띤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그중 기억나는 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스웨덴 영화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 제한할 수 있는 거죠?”


영화가 전국적으로 상영된 후 제 친구들을 비롯한 뜻있는 소비자들이  슈퍼마켓에 항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돌(Dole) 사의 제품을 공급하지 마라!”

결국, 이 문제로 스웨덴의 3대 수퍼마켓 체인 대표가 국회에 회의를 하러 들어갑니다. 우리로 치면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대표가 바나나 문제로 국회에 소환된 셈입니다. 그리고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자, 두 번째 영화의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픽션이었다면 ‘역시 영화니까 저렇게 되지~!’하고 말할 법할 정도로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결말입니다. 소비자의 힘과 정치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 말고도 극적인 재미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박수 치고 나온 영화입니다.


2012년에 개봉한 작품이지만 개인과 다국적 기업의 싸움,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 궁금한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p.s.

자세한 내용은 북유럽연구소의 책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DearMark: 주커버그에게 보내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