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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Oct 12. 2017

"이스털린의 역설"의 진짜 의미

이스털린의 역설 = 행복 한계 효용 감소??

기사를 보는데 '이스털린의 역설 Easterlin's Paradox'이 등장했다. 

한국 뉴스를 기준으로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행복에도 한계효용 체감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소득과 행복은 정비례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이 증가함에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 이 지점을 연간 가구총소득 1억 800만 원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연봉이 오를 때마다 행복이 증가하지만 소득 합계가 1억800만원을 넘어서고 나면 월급이 올라도 행복이 그만큼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2014년 기준 평균 75,000달러, 한화로 8천만 원이 조금 넘는다. 즉 한국에서 행복이 더 비싸다는 소리.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이스털린의 역설을 들고 나온 기사를 많이 봤다. 


행복의 한계효용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고, 

내가 북유럽에서 배운 이스털린의 역설과 한국의 언론이 말하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이스털린의 역설은 한 나라에서 개인의 행복은 소득과 비례하지만, 이것을 확장해 나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한 사회 안에서는 돈이 많을수록 개인의 행복도 증가하는데, 그러면 나라의 부가 증가한다고 개인의 행복이 증가하느냐, 또 그건 아니다. 그래서 패러독스다. 이스털린은 연구 자료를 통해 같은 나라 안에서 시기별로 부가 증가하더라도 전체의 행복은 정체하거나 감소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193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부는 증가했지만 행복지수는 경향성응로 볼 때 정체하거나 감소했다. (표 참조) 



이것의 함의가 무얼까 생각해봤다.

사회 전체의 부는 커졌지만 그 이면을 보면 소득이 늘어난 사람의 수보다 소득이 줄어든 사람이 늘었다는 뜻일까? 

부의 전체 파이가 커진다고 해도 소득이 고르게 분배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까? 

사회 전체의 행복에는 신뢰도나 평등지수, 문화적 차이 등 다양한 요소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일까? 


아시는 분 알려주세요! :)


북유럽연구소 소장 a.k.a. 북극여우 입니다.

노르웨이, 한국, 스웨덴에서 공부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 뜻을 품고 유학길에 올랐지요.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에서 지속 가능 발전을 전공했습니다. 만학도로 없는 기력을 발휘해 재학 중 웁살라 대학교 대표로 세계 학생환경총회에 참가, 웁살라 지속 가능 발전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스웨덴에 있는 동안 모 일간지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습니다. 현재 북유럽 관련 연구와 기고, 강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북유럽, 지속 가능성, 양극화, 사회 통합, 복지국가, 자살, 예술, 철학 etc. 저서로는『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지도자들』,『라곰』(번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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