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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유럽연구소 Jun 29. 2018

쌍용차와 볼보의 같지만 다른 이야기

980명 구조조정과 2,900명 정리해고...두 도시의  다른 결말

쌍용차 파업 이후 지난 10년 사이 30명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쌍용차 사태는 여러모로 스웨덴의 볼보 매각 당시 상황과 비슷합니다. 희생을 줄일 수는 없었을까요? 볼보의 구조조정 진행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1997년 IMF 시절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는 부실경영으로 부채가 누적되어 대우자동차에 인수되었습니다. 2002년에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는데 그때 쌍용자동차는 빼고 인수했어요. 2004년에는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의 새 주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누적적자로 자본잠식이 되었고 2009년 결국 상하이자동차는 쌍용차의 경영권을 포기했습니다. 주인이 몇 차례 바뀌는 동안 쌍용차의 경영은 흔들렸습니다. 기름값도 오르고 제도와 가족 유형도 변하면서 사람들은 소형차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SUV와 대형차를 주로 생산하던 쌍용차는 점차 시장에서 입지를 잃어갔습니다. 1인당 생산성도 경쟁사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낮았습니다.


쌍용차 980명 구조조정

쌍용차는 2009년 6월 980명을 구조 조정했습니다. 462명 무급휴직, 353명 희망퇴직, 165명 정리해고. 전체 인력의 13.7%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해고 무효를 외치며 파업과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해고 무효소송도 했습니다. 정리해고를 위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지, 회사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는지 등의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만들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2014년 2월 서울고법은 “정리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거나 사측이 해고 회피 노력을 충분히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상위 법원인 대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며 서울고법의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2014년 11월 대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자의 해고무효소송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렸고 해고는 적법한 것으로 인정했습니다. 이후 해고자 단계 복직에 대한 노사합의를 했고, 단계적으로 복직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 3년 간 복직이 이루어진 인원은 45명입니다. 남아있는 사람 중에는 2009년 시위 중 체포되어 경찰 폭력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이도, 경찰 진압 당시 투입된 헬기 훼손 비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때문에 답답해 잠을 못 자는 이도, 새벽부터 투잡을 뛰어도 가족을 부양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어 괴로워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 사이 서른 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이 자살이나 병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몇 년 전에는 쌍용차 평택공장의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던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를 응원하며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SNS 캠페인 “응답하라 쌍차 챌린지”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응답하라 쌍차 챌린지’ 지명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였습니다. 세기의 지성 지그문트 바우만도 동참했는데 뭘 망설이느냐, 이게 고민할 일이냐 물으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경영자의 판단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쌍용차 자료를 보면 어떤 형태로든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고공농성을 벌이던 쌍용차노조의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을 응원하는 지그문트 바우만


2,900명 정리해고, 스웨덴 ‘볼보’ 사례

스웨덴의 볼보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상황을 거쳤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숱한 기업이 무너졌습니다. 중장비 및 자동차 제조의 명가인 볼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4개월 동안에 볼보의 직원 2,900여 명이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습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볼보는 결국 중국에 매각되었습니다. 졸지에 직장을 읽은 2,900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한국에서 가장이 갑작스레 실직을 하게 되면 온 가족이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은 물론 의료보험 등의 공공서비스도 제한됩니다. 목돈으로 나가는 아이들 학비며 사교육 비용은 어디서 마련해야 할지 가족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교육, 의료 서비스가 이미 무상으로 지원되는 북유럽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볼보의 본사가 있던 예테보리 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충실한 납세자 2900명이 갑작스레 지위를 바꿔 실업급여 수급자가 되었으니까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온 나라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 정부의 국영 직업안내소와 예테보리 지자체, 볼보의 인사팀이 머리를 맞댔습니다. 정리해고의 경우 6개월 전에 해고 통지를 해야 합니다. 특별팀은 해고 통지 후 바로 볼보 안에 직업안내소를 설치했습니다.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은 볼보로 출근하면서 이직을 준비했습니다. 기존의 직종과 연관성 있는 업체로 이직을 하기도 하고, 이 참에 직업을 바꿔보겠다 재교육을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이직 희망자를 위해 회사는 나서서 추천서를 써줬습니다. 경영상황이 어려워 해고했을 뿐 어디서도 맡은 일을 해낼 능력 있는 노동자임을 보증했습니다. 사람들은 해고 통지를 받았지만 여전히 웃으면서 출근했습니다. 스웨덴 정부와 지자체, 노동조합과 회사가 힘을 모아 재교육과 전직을 알선했습니다. 해고 통지 1년 만에 2,900명 중 2,635명이 전직했습니다. 경영상황이 좋아지자 볼보는 약속대로 해고노동자를 우선 고용했습니다. 정리해고를 단행한 지 2년 만에 1,556명이 볼보로 돌아왔습니다.


쌍용차 구조조정이 일어났을 2009년 당시 정부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시위 중인 사람들을 강제 연행해 폭력을 행사했고, 약속했던 해고노동자 우선 고용을 통해 돌아온 이는 단 45명, 지난 10년 간 30명이 병이나 자살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물론 볼보처럼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좋았겠지요. 하지만 한국과 스웨덴은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갑작스러운 해고는 그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 노사가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힌 스웨덴과 달리 우리의 노사는 서로를 투쟁의 대상으로 대합니다.


태생부터 좋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스웨덴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태생부터 좋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이야 노사관계의 모델로 툭하면 언급되지만 덴마크와 스웨덴 모두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스웨덴은 극렬한 장기파업으로 유명했습니다. 농성 중에 군대가 발포해 몇 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상황이 험상궂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덴마크에서도 전국 단위 파업이 줄을 이었습니다. 경영진은 될 대로 되란 듯 직장폐쇄로 맞섰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노사는 이대로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두 나라 모두 극적인 타협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1899년 덴마크의 9월의 대타협, 1938년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협약이 그 결과입니다.


덴마크의 9월 대타협은 100년도 더 전에 이뤄졌습니다. 그때 노동자와 경영자가 맺은 약속은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는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할 수 있으며, 경영자는 경영환경이 악화되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대신 정부가 나서 해고자에게 연금을 주고 직업을 찾아줍니다. 물과 기름처럼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 개념인 고용 유연화와 고용 안전성을 결합한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모델이 바로 덴마크식 해법입니다. 기업은 경영의 자율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해고가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근로자는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최장 450일간 직전 월급의 80%에 이르는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고, 고용노동부에서 앞장서 직장을 구해주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은 살트셰바덴 협약을 이뤘습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대립에 지친 노사가 스웨덴의 유명한 휴양지 살트셰바덴에 모여 앉았습니다. 스웨덴경영자연합회(SAF)와 노동조합총연맹(LO)은 그 자리에서 가진 패를 다 내려놓았습니다. 회사가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고 노조원들을 설득해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정부가 나서 무상에 가까운 의료서비스와 교육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기업은 회사가 일군 배당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대신 지주회사를 통한 소유 구조와 차등의결권을 보장받았습니다. 스웨덴이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발렌베리 가문은 발렌베리 재단을 통해 재산을 관리하는데 발렌베리 연구기금은 스웨덴 고등교육 기관의 든든한 후원자로 스웨덴의 기초과학 연구는 물론 사회 통합, 평화학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 연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환원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 이후 노사는 서로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역사적인 스웨덴 노사정 대타협(1938)이 있었던 그랜드 호텔 살트셰바덴 (2013년 모습, 위키백과 공용)


노동자와 경영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동등하게 여기는 것은 제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업 운영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의 문을 노동자에게도 열었습니다. 전체 이사 수의 1/3에 해당하는 좌석을 노동자 몫으로 보장받아 노동조합이 지정한 사원 대표가 이사회에 참석합니다. 이들은 대표이사 등 회사 경영진과 함께 주요 결정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개진하고 의결권을 행사합니다. 노동자 대표가 의사 결정에 참여하니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정치, 구경꾼이 될 것인가? 해결사가 될 것인가?

이 과정에 정치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46년부터 1968년까지 무려 23년간 사민당 출신 총리로 스웨덴을 이끈 타게 에를란데르는 격주로 목요일마다 재무장관 주재 하에 직군별 노사대표를 불러 모아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 견원시하던 경영자 대표와 노동조합 대표는 매주 저녁을 먹으며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속내를 비치며 서로의 고민을 나눴습니다. 목요클럽이라 불리는 이 모임을 통해 노사가 마주한 현안은 극한 상황에 치닫기 전에 해결되었습니다. 노동조합과 경영진, 그리고 정부가 가깝게 소통하는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350번 만났습니다.”

2013년으로 기억합니다. 파업으로 인한 경제손실 제로를 자랑하는 스웨덴 노사관계의 비결을 물었을 때 당시 스웨덴 재무장관 안데르스 보리(Anders Borg)의 답입니다. 참고로 보리 장관은 진보계열이 아닌 부르주아당으로 분류되는 보수계열 자유당 출신입니다.


안데르스 보리 전 스웨덴 재무장관


스웨덴의 노동조합조직률은 67.3%(2014) 한국은 10.3%(2016)입니다. 전체 노동자 중 조합가입자의 비율을 놓고 볼 때 스웨덴 노동조합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조직입니다. 스웨덴의 노동조합 뒤에는 전체의 과반에 달하는 수의 노동자가 있습니다. 규모로도 무시 못 할 조직이기 때문에 협상력을 갖고 사측과 동등하게 논의를 풀어나갈 수 있다. 또한 동료 노동자가 어려움에 처할 경우 같은 회사가 아니더라도 산별노조와 전국 노조에서 전해오는 지지와 연대는 개인이 무너지지 않도록 돕습니다.

 

우리 중 다수는 어떤 형태로든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단어 자체를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 여깁니다. 그런 우리는 어쩌면 끝자락까지 내몰려 싸우는 노동조합의 고군분투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미안한 직장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누군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못된 방법입니다.

결국 죽음 말고는 자신의 억울함과 좌절을 표현할 길 없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런 식의 투쟁 방식은 경영진을, 또 사회를 향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보는 사람들은 “저 회사 문제 많은 회사구나. 쌍용차 사도 되려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쌍용차 측에 불편한 맘을 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에 더 화를 내야 하는데 말이지요.  


결국 해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정부입니다. 기업의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습니다. 시장은 결코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기업은 절대 먼저 움직이는 법이 없습니다. 기업은 정부가 지시해야만 겨우 움직입니다. 스웨덴 기업이 착해서 저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 경영인도 회고하기를 정부가 강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했다고 말했으니까요.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이 있지요. 만약 교육과 의료가 보편복지로 해결되는 상황이었다면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들의 절박함이 지금과 같을까 하는 고민도 듭니다.


전 아직 어떤 쪽이 맞는지를 떠나, 이런 방식의 투쟁을 바라보는 것이 힘든 사람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말을 거는 사람들을 모른 체하면 결국 지쳐 떨어져 나갈 거라는 사회적 학습효과에 반대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쌍용차 문제에 정부가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쌍용차 문제가 더 많이 알려지고,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회 토론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그게 북유럽연구소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북유럽연구소 소장 a.k.a. 북극여우 입니다.

노르웨이, 한국, 스웨덴에서 공부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 뜻을 품고 유학길에 올라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에서 지속 가능 발전을 전공했습니다. 만학도로 없는 기력을 발휘해 재학 중 학교 대표로 세계 학생환경총회에 참가, 웁살라 지속 가능 발전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스웨덴에 있는 동안 모 일간지 북유럽 통신원으로 일했습니다. 현재 북유럽 관련 연구와 기고, 강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북유럽, 지속 가능성, 양극화, 사회 통합, 복지국가, 자살, 예술, 철학 etc. 저서로는『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지도자들』,『라곰』(번역),『퇴근길 인문학 산책:관계』(공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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