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자주 들여다보지 않던 뉴스가 왠일로 궁금해져 뒤적거린다. 한국의 무더위와 침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폭염. 전년과는 또 한번 확연히 다른 날씨가 실감난다.
우리의 칠 월은 어땠을까. 올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다. 잠시 하늘이 맑은가 싶다가 이내 창문으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며 자국을 남긴다. 작년 이 맘즘엔 민소매를 입고 가볍게 다녔겠지만 요즘은 긴팔에 긴바지, 어느 날은 코트를 입지 않곤 나가기 어려울 만큼 날이 서늘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터지는 이상기후를 보며 기분이 묘해지고 다시한번 뜨거워지는 지구에 대해 돌아보며 반성을 하다가도, 은근히 속으로 이 곳은 아주 조금만 더 따뜻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세상에 불평하자고 하면 한도끝도 없듯이, 오늘도 날씨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동안 건조했던 나무와 풀들이 충분히 목을 축일 수 있겠다 생각하면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아직 물기가 마르지않은 우리집 식물을 바라보며 '햇볕을 충분히 받아야 잘 자랄텐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덴마크에선 날씨가 하루에 4-5번씩 바뀌기도 하고 해가 쨍쨍하게 덥다가 갑자기 서늘해지는 날씨가 반복되어 여름옷과 겨울옷을 확실히 나누지 않고 지낸다. 언제 추워질지 몰라 한 켠엔 소매가 짧은 옷들을 한 켠엔 가을 겨울옷 몇 벌을 옷장에 예비해 둔다. 한 해의 반은 비가 내리기에 레인코트는 온 첫 해 바로 장만해 두었다. 덴마크에 바람이 많이분다는 사실을 잊고 샀던 레인코트가 바람에 모자가 쉽게 벗겨져서 최근 플리 마켓에서 하나 구매했는데 비오는 날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자전거를 타는 날엔 레인코트에, 레인팬츠, 장화까지 신고 단단히 준비하고 집을 나선다. 아무래도 입는 일이 많다보니 일상복으로 입기에도 무리가 없도록 깔끔하게 디자인이 잘 되어있어서 평상시에도 종종 입고다니곤 한다.
아침 내내 오던 비와 구름이 이내 걷히고 오후나절 되서야 하늘이 개기 시작하자 이바가 정원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내려둔 커피와 커피잔을 트레이에 담아둔 뒤 읽을 책 한권을 꺼내들고 그곳으로 향한다. 정원이자 작은 공원인 이 공간은 건물 사람들을 위한 곳으로 편안하게 앉을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원하면 바베큐도 즐길 수 있게 그릴도 마련되어있다. 여름이라 다들 휴가를 가서인지 동네가 조용해서 둘이 종종 짧은 휴식을 취하러 내려오곤 한다. 커피를 테이블에 놓고 다리를 뻗은 채 고개를 젖혀본다. 감은눈으로 보이는 미세한 빛과 따뜻한 기운에 몸이 녹는 듯 나른해진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지낼 땐 사계절 내내 해가나기에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해본적 없는데 이 곳에 온 뒤로는 꼬박꼬박 비타민을 챙겨먹게되고 해가 나는게 보이면 무조건 밖에 나가려고 한다. 이 곳에선 처음보는 사람들과도 만나면 날씨 얘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지루할 법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새롭다는 듯 각자의 불평을 내어놓는다. 가져온 책을 펼쳐두고 한 장 두 장 넘기다 다시 눈을 꼭 감아본다. 아, 이 순간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숨을 길게 내쉬다 ' 한 달 뒤면 다시 8개월의 긴 겨울이 돌아오겠지' 라는 생각에 벌써 아쉬운 마음이 차오른다. 하지만 또 그렇기에 이 남은 계절을 아낌없이 즐기면 되는 것. 일찍이 휴가를 이미 다 써버려 여행을가긴 어렵고.. 이 곳에서 무얼 하며 보내면 좋을까? 같이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작은 계획들로 여름의 마지막 달력을 채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