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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서 Oct 11. 2022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출간 소식 알립니다.

자기 자신으로 남느라 자주 외로웠던 사람들을 위해

@semicolon



한동안 소식이 뜸했는데요. 첫 책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가 출간되었습니다. 언젠가 동명의 브런치북에 실었던 스무 편의 에세이와 이곳에 연재했던 산발적인 산문 여러 편, 그리고 추가로 작성한 새로운 글 여럿을 묶고 다듬어 만든 산문집입니다. 세미콜론 출판사와 함께했어요.


@브런치북 캡처본


책에 실린 50편이 넘는 이야기는 모두 제 사랑, 시, 가족, 슬픔, 일, 일상에서 길어 올린 것들입니다. 아주 사적인 기록들이죠. 저에겐 조금도 새로울 것 없고 평범한 이야기라서 쓰는 내내 고민스러웠습니다. 이 글들이 책으로까지 만들어져도 되는가, 이토록 말많은 세상에 나까지 한 술 더 얹어도 되나 하고요. 서재에 자리한 근사한 작가들의 책들을 보며 주눅이 들었어요. 그러나 그것들이 제 책장과 책상을 아름답게 어지럽힌 모양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한 문장으로만 남아도 좋다. 아니, 누군가의 삶 한 귀퉁이에 자리하기만 해도 좋다.'


제 책이 어느 날 화분이나 깎은 손톱 받침대가 된다고 해도 속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잘 모르는 삶의 한 풍경에 제 이름이 끼어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영광스러우니까요. 책을 위해 원고를 쓰는 행위는 극내향인인 김해서가 남의 삶에 끼어들 절호의 기회인 셈입니다. 이 첫 마음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욕심 없이, 글이 삶이 될 때까지,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시인 박연준 선생님, 기꺼이 과분할 정도로 멋진 추천사를 써주신 김신식 선생님, 걱정도 요구도 많은 초보 작가와 소통하느라 누구보다 고생 많으셨던 김지향 편집자님과 세미콜론 편집부, 아름다운 푸른빛으로 이야기를 감싸주신 김마리 디자이너님, 이미 사랑스러운 시인들인 모과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외로운 글쓰기를 응원해준 가장 오래된 독자이자 영혼의 단짝인 목화와 유정과 정현에게도 감사합니다. 일터와 SNS와 일상에서 스친 다정한 친구들, 책 계약 소식에 나보다도 기뻐해 주신 엄마 아빠에게도 깊은 사랑을 보냅니다. 그리고 내 아픈 손가락이자 내가 인정하는 유일무이한 예술가 동생아. 네가 아니었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책이란다.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한 줄도 나아가지 못했어. 내 삶은 텅 비었을 테니까.


덕분에 용기와 믿음을 안고 쓸 수 있었습니다. 슬픔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제 손을 떠났으니, 자기 자신으로 남느라 자주 외로웠던 사람들에게 책이 닿기를 바랍니다. 답장이 없던 삶에, 편지처럼요.





[작가의 말]


노트북 키패드의 'ㄴ'이 자꾸 빠진다. 방금 첫 문장을 쓰는데도 세 번을 눌러야 했는데, 덜렁덜렁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ㄴ'을 붙들고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바라고 있다. 수리센터에 오천 원만 내고 맡기면 해결될 문제라는 건 안다. 하지만 가지 않았고, 업무 메일을 작성할 때도 시를 쓸 때도 'ㄴ'만큼은 신생아 다루듯 조심스럽게 누르고 있다. 누군가는 나더러 괴팍하다고 할 테다. 변명할 필요성은 못 느끼지만, 주변에서 뭐라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일단 내 입장을 고한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해. 슬퍼지려고 하니까 다그치지 좀 말아 줄래?"


손이 자주 주춤거린다고 해서 글을 못 쓰지 않는다. 일하는 도중에 'ㄴ'이 빠지기라도 하면 다시 임시로 끼워 넣느라고 진땀을 빼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제때 못한 적도 없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불편해 보려는 사람이다. 끼어드는 사고에 기꺼이 들이받는다. 


아끼던 부츠 밑창이 반으로 갈라졌는데도 접착제로 이어 붙여 꿋꿋하게 신고 다니고, 신을 믿지 않으면서 동생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 식물 키우는 일에 흥미가 없지만 선물로 받은 아이들을 여태 살리고 있고, 극도의 내향인이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로 돈을 번다. 줄을 서다 누군가 내 순서를 가로채 새치기해도 잠자코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게 내 손해일까? 그날들을 후회한 적 없는데?


살아지는 대로 살았으면서 인생 첫 책은 시집이 될 거라 기대했다. 시는 내가 아는 것 중 가장 근사한 것이니까. 뭘 크게 이뤄본 적이 없으니, 등단해서 삶의 상한 부분을 슬쩍 덮어보려는 속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고장 난 키패드보다 궁색한 개인적인 이야기로 첫 책을 쓰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꿈에도 몰랐다. 마음 같지 않은 날들, 대놓고 보여주기엔 부끄러운 삶의 더부룩한 내장을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쓰는 내내 의심스러웠다. 이번에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벽에 기대 주저앉은 사람이나 부러진 나막신, 잘린 귀처럼 슬픈 'ㄴ'의 모양으로 계단처럼 쌓여갔다. 


다 쓰고 나니 보였다. 내가 이런 모양으로 구겨진 사람이라서 지금까지 시를, 괴짜 같은 성미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리게, 너절하게,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고집을 부리며 살아온 덕에. 쓰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이었다.


쓰는 동안,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띄우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글의 마침표를 찍을 땐, 답장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어느 평온한 저녁을 맞이한 것 같았다. 내 숨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더 빨리 더 많이 행동하라고 독촉하는 듯한 세상 때문에 왕성하게 슬펐으나, 고요 속에서 서서히 기쁘다. 머지않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페이지 역시 내가 기대하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고 고작 키패드를 수리하는 정도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바라온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을 서둘러 떠나지 않을 것이다. 비키지 않는다. 사랑이 얼기설기 그러나 양보 없이 삶에 들어차도록. 


자기 자신으로 남느라 자주 외로웠던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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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구매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294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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