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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서 Feb 26. 2023

[초초분분] prologue




prologue



한 곡 반복 모드를 좋아한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나 집에서 설거지할 때, 샤워할 때 맴맴 한 음악이 계속 귀를 휘감고 관통하고 미끄러지고 기대고 찌른다. 반복되는 곡은 음악으로서의 힘을 잃고 세상의 무수한 소음과 마찬가지로 점차 나의 배경이 된다. 나는 노래가 언제 끝나 다시 시작되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음악을 구름처럼 산새처럼 흘려보낸다. 



음악은 계속 돌아오고 떠난다.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을 닮았다.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구간이거나 들을 때마다 감탄하는 가사의 타이밍이다. 그럴 때, 그 곡이(직접 만든 것도 아니면서) 내 몸과 하나가 되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실크 드레스처럼 피부에 붙어있는 것이다! 



시를 이처럼 감각한 적 있던가. 매일 생각하고 자꾸 쓰려 하지만, 시는 내 곁의 무언가는 아니다. 뱃속 아주 깊은 곳 혹은 손톱 가장 끄트머리에서 천천히 끌어오는 수레와 같은 무게를 가진 걸 보면, 시는 피 혹은 목소리. 입는 것이 아니라 이미 품어 차차 흘리는 것. 꼭 맞는 속옷이나 가운처럼 느낀 적은 없다. 그래서 음악이 특별하다. 내가 아닌 것 중에서 가장 내 가까이 밀착할 수 있다.



초초분분, 한 곡이 출발하여 끝나고 다시 되돌아가는 그 시시각각. 나는 완전히 순종적인 태도로 감각을 열어둔다. 좋아하는 곡을 반복재생하는 순간만큼은 그저 철저한 수용자가 된다. 판단? 그런 거 없다. 분석? 전혀. 하늬바람이 닿으면 전신의 피부가 오소소 발돋움하는 법이고, 그걸 굳이 찍어 누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 세상과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몸은 천국행 티켓을 받는 최초의 비신앙인이 될 지도.



언젠가 내 밤낮을 차지한 곡들을 등불 삼아, 지나가버린 매초 매분의 장면을 복기하는 작업을 거치려 한다. 그날들에게 OST를 붙여줄 것이다. 첫 책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에서 밝혔듯이 처음부터 다시 살아도 좋을 삶이므로, 쓰는 동안은 친구와 함께 고향골목을 유영하는 것처럼 씩씩하게 행진하고 싶다. 대학 시절 학교 근처 단골카페에서 줄기차게 들었던 종현의 <사람 구경 중>, 여지없이 또 실패한 등단과 지겨운 시를 생각하며 걸었던 정릉천과 김윤아의 <꿈>, 울다 지친 밤에 작은 조명만 밝히고 틀어둔 더 블루 나일의 <Let's Go Out Tonight>, 발매 이후 수년간 아빠의 벨소리인 조용필의 <걷고 싶다> 등 다시 오늘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로 무장하고 찾아간다. 그날로. 



내내 나는 또 한 곡 반복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다.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읽는 당신도 당신만의 초초분분이 깨어나는 체험을 하길 바란다. 기억은 왜곡될 수 있지만 기억에 뿌리 박힌 감정은 늙지 않는다. 조우하게 될 것이다. 언제 들어도 한결같은 음악처럼 그대로인 당신을. 





秒秒分分

초초분분


2023.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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