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충들이 가는 곳?
아이가 태어난 후, 유모차로 동네를 산책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외출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우리도 이제 슬슬 좀이 쑤시고, 인스타그램에 하나 둘 올라오는 또래들의 외출 일기를 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닌가 보다 싶기도 해서 어딜 좀 가 볼까했다.
"맘충들이 어딜 가는지 알아볼까?"
나는 1초도 기다리지 않고 쏘아붙일 수밖에 없었다.
"맘충이라니 무슨 그런 말을!"
그리고 이어진 남편의 반응 속 말투와 표정은 익숙한 것이었다. ‘네가 맘충이라는 것이 아니다.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면서 토요일 아침부터 또 정색이냐. 넌 뭐 매사 그렇게 독립투사처럼 구느냐. 네가 말하는 맞고 틀리는 문제보다 남편의 기분을 맞춰주면 어떠냐. 나도 알 거 다 안다. 나를 아무 생각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말아라’가 모두 담긴, '진지충 반사'의 표정으로 "뭘 또 그걸 걸고넘어져"라고 말했다.
생각은 언어로 구성된다. 단어가 생기면 단어에 대한 태도가 형성되고, 태도는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내며, 그렇게 양상이 생긴다. 어떤 집단에 대한 태도가 생기려면 그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가 필요한 것이다. 지칭할 단어가 없는 상상 속의 집단을 혐오하거나 차별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그 단어가 자꾸만 사용되는 것이 불편하다.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이 지탄받아야 할 특징은 "예의 없음"이지 "엄마 됨"이 아니다. 하지만 그 단어가 보편화되면서 끊임없이 "이렇게 하면 맘충인가?"하는 질문이 생겨난다. "엄마 됨"의 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평가 대상이 되고 검열받는다. 그러다 보면 편견이 생긴다.
"~족" "~충" "~세대" 등 타인들을 묶어 부르는 단어를 자꾸 만들어내는 것을 의식적으로라도 지양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떤 사람들의 예의 없는 행동이 거슬린다면 그 행동에 집중하여 비판하면 안될까? 인구통계적 특성이나 외모 같은 것으로 이름 붙이기 먼저 하지 말고.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일상 속 습관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언어가 생각을 만드니까 말이다. 매일같이 내뱉는 말이 생각이 되고 사상이 되어 우리의 행동과 가치가 되는 것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입을 다물었다. "진지충" 소리가 무서웠고, 버텨내야 할 주말이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가족을 화나게 하지 않고 나의 반대 의견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