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결국에는 잊힐 것이다. 그래서 또 적어 둔다.
피곤하지만 활기는 있는 주말 오후였다. 남편은 주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 그릇들을 바삐 옮기다가 그릇에 남아있던 커피가 그의 바지 위로 흘렀다. 내가 오전에 티백형 커피를 우려 마셨는데, 티백을 빼둔 그릇 위에 다른 쓰레기를 겹쳐두는 바람에 흘러나온 액체가 안 보였던 것 같다.
욕이다. 들고 있던 그릇을 싱크대로 던지고 성을 낸다. 바지를 한 번 보고, 함께 정리하고 있던 나를 한 번 노려보고 또 욕이다. 그리고 또 욕이다. 그릇을 다시 한번 던지고 다시 욕이다. 그릇은 실리콘이라 깨지거나 큰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또 욕이다. 그리고 다시, 눈으로 내게 욕을 한다.
그는 이내 바지를 벗어 얼룩제거제를 뿌리고 세탁기에 넣는다. 또 한 번 욕이다. 같은 자리에 얼어붙어있던 나는 30초 뒤에야 아이 생각이 난다. 뒤를 돌아보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 들었겠지. 45초 즘에 나도 움직였던 것 같다. 바닥에 조금 남아있던 커피를 휴지 몇 장을 뽑아 닦는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 척 방으로 들어가니 아이는 문을 살며시 닫는다. 아이가 "무서워"를 반복하고 있다. 웃고 있지만 긴장하고 있다. 아빠가 아끼는 바지를 망쳐서 화가 난 것 같다고 말해주고 걱정 말라고 말해줬다. 책도 읽고 오디오북도 들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간을 보낸다.
더 늦은 오후, 남편이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온다.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괜찮다고 했다. 괜찮지 않다고 하면 더 큰 소리를 내야 한다. 뒷목이 굳고 가슴이 뛰던 것이 겨우 가라앉았는데 다시 파동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바지에 커피 튄 것을 보니 이성을 순간적으로 잃었다"라고 했다. 알고 있으니 그만 사과하고 나가 줬으면 좋다고 했다. 눈물이 터져 나오고 있었는데 보이고 싶지 않았다. 거듭 미안하다고 한다. 웃으면서 여러 번 사과한다. 또 괜찮다고 했다.
아이한테도 머리를 들이밀며 농담을 섞어 미안하다고 한다. 아이 역시 못 이기는 척 웃으며 넘긴다. 9실 아이가 아빠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가 아빠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잠시 울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에 대해서 적을 필요도 없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무능하고 하찮은 존재였는지도 적을 필요 없다. 바지에 커피 얼룩은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의 죄책감도 그럴 것이다. 그의 기억에 자기 자신은 주말 오후 성실하게 주방일을 하고, 큰 피해를 입고 잠시 감정을 드러냈지만 정중하게 사과한 멋진 남자일 것이다.
그 순간 꺼져버린 내 속의 활기가 다시 생기는 데에만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