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적어놓고 일단은 잊어버리자

by aqua planet

휴일이다. 하루 종일 남편은 집에 있었고, 나는 오전에 아이를 데리고 키즈 까페에 갔다가 귀가했다. 남편은 속이 안좋다며 며칠째 식사를 거르고 있다. 밥을 해두고 나온 것이 아니니 집에 가면 점심이 늦는다. 개학을 코앞에 둔지라 긴방학 내내 밥을 해대느라 고민하던 머리도 손도 지쳤다.


돈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배달 음식으로 떼우고 싶진 않았고, '좋은 음식 간단하게' 먹고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비싼 소고기 한 팩을 샀다. 내 카드, 내가 번 돈으로 내가 갚을 돈. 그걸 사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까르르 웃었다. 간단하게 구워서 좋아하는 우동 끓여서 얼른 먹자 하면서.


불안함도 동시에 있었다. 고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 가성비가 무엇보다 중요한 남편. 얼마냐고 물어볼텐데. 분명 좋지 않은 말을 할텐데. 가격표를 떼어 버리고 들어갈까 하는 생각을 잠시했다. 보통 고기는 본인이 구워주며 뿌듯해하기 때문에 분명히 가격을 보게 될텐데 그 전에 얼른 떼어버릴까?


그러다가 그만 뒀다. 내가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불안해하며 살며, 내가 그렇게까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래봤자 셋이 나가 외식하면 써야 하는 돈의 반 밖에 안된다.


역시나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정말 어이가 없단다. 뭔지 알고 샀냐고 몇번을 묻는다. 조금 자신이 없지만 제일 좋은 것으로 달라고 해서 샀노라고 떨림을 감추고 말했다. 더 어이 없어한다. 반값에 사도 맛차이가 없는데 정말 어이가 없는 행동이라며 몇번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맛있게는 구워준다. 먹고 있는데 또 말한다. 어이없다며,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한다. 30층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버리고 싶은 기분이 울컥 올라오지만 꾸역꾸역 고기를 먹는다. "역시 아빠는 고기를 잘 구워 그치?" 라면서 괜시리 아이에게 말을 돌린다. 눈치 빠른 아이는 눈과 볼이 빨갛다. 그 애도 이 분위기를 무시하려는 듯 허겁지겁 먹는다.


두번째 역시나가 온다. 저녁이 되니 사과를 한다. 너무 뭐라고 해서 미안했다고. 그것도 그럴 줄 알았다. 보통 그렇게 내키는대로 화를 내놓고 저녁에 사과한다. 심하면 하루 이틀 더 갈 때도 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는건지 누구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는건지 모르겠어서 일단 적어 놓는다. 나는 멀쩡한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도맡아 돌본다. 지금 당장에 아이와 둘이 먹고 살아야 한다 해도 큰 문제가 없는 일을 한다. 아이는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지도 체감을 잘 못한다. 근무 시간을 조절하고 사회인으로서 체면을 상해가며 돌봄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존중받기 위해서, 독립적이기 위해서 애를 쓰며 살았다. 그래, 사실 나는 정말 좋은 일을 한다. 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며 내가 정말 흥미로워 하는 주제를 다룬다. 내가 일하며 살고 있는 "척" 하는 그 어떤 삶은, 4만원의 소비에 대해 아이 앞에서 질타를 받으며 울음을 삼켜야 하는 이 삶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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