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든 건 나를 위한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의외라 생각했다. 내가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는 것인데, 성인이 될 때까지도 딱히 인지하지 못했다. 과거에 보았던 여러 사주 결과에서 책임감이라는 공통적인 내용이 나오곤 했다 (사주는 맹신하지는 않지만 마냥 무시하지도 않는 편이다). 내가 바라보는 스스로의 이미지와 상반된다고 생각했기에 남편에게 이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남편은 공공연한 사실을 몰랐냐는 듯, 종종 내가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려고 할 때도 있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그간 책임감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내 딴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인지하지 못했던 걸까. 얽매임을 선호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향 때문인지 오히려 스스로를 책임감과 먼 인간이라 생각했건만, 헬렐레하는 것보다야 책임감이 있는 게 뭐라도 낫지 않겠나 싶다.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은 간과하기 쉽다. 가족에 대한 가장의 책임감, 육아에 대한 엄마의 책임감, 부모를 부양할 자식으로서의 책임감 등 흔히 표현되고 언급되는 전형적인 책임감이 있다. 의외로 나 자신을 신경 쓸 책임감은 살핀 적 없는 듯하다. 누구라도 자신이 나아지길, 행복하길, 성장하길 바란다. 불행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이 당연한 바람 이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동반된다. 살아가는 여정은 결국 나를 책임지는 긴 일련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책임을 진다는 말이 좋다. 책임을 지고자 하려는 것만큼 훌륭한 동기가 없다. 책임감을 발휘한다면 나를 위한 아주 사소한 결심조차도 등한시하지 않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걸림돌을 맞닥뜨린다. 간혹 혼란스럽고, 귀찮기도 할 것이며, 의문이 들 거나, 좌절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내 결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책임에는 군말이 필요 없다. '지켜야 한다'는 명백한 약속 하나로 이런저런 핑곗거리는 그 자취를 감춘다. 때로 내게 필요한 건 생각이 아닌, 그저 책임을 지고자 하는 단순하고도 묵직한 사실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