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함은 새로운 관점을 준다.
요 며칠 고민으로 살짝 끙끙댔다. 근래 글쓰기를 썩 싫어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게 나를 어디로 이끈다는 말인가. 다음 스텝을 밟아야 했다. 내가 글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봤다. 이리저리 날뛰는 생각을 제약 없이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어 좋았다. 내 생각을 꺼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글을 애정 하지만, 순수하게 글 자체를 향한 각별한 사랑은 없었다. 앞으로도 글쓰기에 꾸준히 전념할 이유는 글이 아이디어를 실체화 시켜주며 하나의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뼈대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가진 글의 힘은 분명 대단하지만, 글을 주인공 대접해줄 게 아니라 도구처럼 활용하고 싶었다.
또 다른 선을 넘기 위한 구간에서 잠시 멈칫거리던 상태였다. 나는 고민이 생겨도 남한테 잘 털지는 않는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지인이 없기 때문이거니와, 고민은 오로지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쓸데없는 독고다이적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 개인적 목표를 위한 고민은 남편에게도 활발히 공유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각자 깔짝대는 영역과 결이 다르기에 남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실질적 도움이 없을거라 짐작했다.
주말에 바람을 쐬러 가던 차 안이었다. 서로 요즘의 생각을 나누던 중 의도치 않게 묵혀두던 고민을 불현듯 살짝 뱉었다. 사실 말해 뭐 하겠나 싶은 최저치의 기대가 깔려있었다. 남편은 경청했고 내가 글을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자아실현인지 수익화인지 물었다. 내 답변을 토대로 남편은 본인이 생각하는 현재 상황에서의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남편의 의견이 내가 모르던 영역도 아니었지만, 왜인지 딱히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내 안에서는 제자리만 맴돌던 생각이 남편의 간단한 제안으로 수렁 밖으로 신속히 빠져 나가는 듯했다.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가능성에 마음이 기우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시간, 남편의 조언을 참고하되 내게 더 부합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자 혼자 간단한 조사를 해본다. 내가 비벼봐도 될법한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인지 궁리해 본다.
무지함은 오히려 새로운 관점을 주기도 한다. 초딩 시절에 친오빠랑 즐겨 했던 '킹오브파이터'라는 싸우는 게임이 있었다. 가끔 게임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모든 버튼을 무식하게 연타하면 고수를 이기기도 했다. 필살기 같은 것 몰라도 무지함이 먹힐 때가 있었다. 무지해서 이기지 못하는 법은 없다는 말이다. 나에 비해 글이라는 영역에는 깔짝대지 않았던 남편에게 얻을 도움이 없으리라 짐작한 건 편견이었다. 나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과정보다는 결과 지향적인 남편의 촉과 관점은 나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때로는 스스로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정작 눈이 가려지기도 한다. 애매하게 뭔가 알고 있기에, 알 것 같기에 지레 판단하고 뒷걸음칠 치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또는 무지하다고 할 수 있는 남편의 관점에서 나온 의견은 내가 고려해 보지 않은 가능성을 어쩌면 믿어볼 수 있게 한다. 무지함의 쓸모가 이렇게 빛을 발하기도 한다. 하얀 도화지에는 칠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생각이 과잉될수록 한 발 의도적으로 물러나, 무지한 상태로 돌아가야 할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