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머신이 지루하게 느껴져
요즘은 트랙이 있는 야외 체육시설에서 달린다.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방울.
땀인지 비인지 뭔지도 모를 것들이 온몸에 뒤섞인다.
운동을 끝낸 후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거세지는 빗줄기.
이 정도 비 싸대기를 맞는 건 계획에 없었다만,
집은 가야하니 우선 자전거로 빗속을 달린다.
거친 빗줄기에 시야는 흐려지고
입속으로 밀려드는 빗물에
살면서 그간 몰랐던 비 맛도 이참에 알게 된다.
우산을 쓴 이들이 왠지 모르게
나를 짠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비를 억수로 맞는다는 것,
처음엔 불편했다.
하지만 곧 그것마저 잊게 되고, 생각은 멈춘다.
아싸리 내려놓으니 비를 맞을수록
점점 묘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다.
'비는 맞지 않아야 한다'는 어떤 통상적인 관념,
비를 맞으면 예상되는 일들에 대한 일종의 시뮬레이션,
그것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실행할 때
스스로의 틀을 깨보는 하나의 실험이 되기도 한다.
늘 생각으로 컨트롤하던 현실.
찬 비에 몸은 젖고, 앞은 흐려지고.
계획에 없던 감각들이 밀려올 때
생각이란 것은 중요치도 않고 별 의미 없이 무너진다.
비를 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황을 굳이 통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상황을 통제하지 않는 무방비함,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작은 무너짐.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뜻밖의 진짜 자유가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