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강진 탈출기_<1>새벽 3시 잠에서 깨다

by kkh

2018년 9월 6일 03:13 홋카이도 삿포로시 아파호텔


침대가 크게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전날 호텔방에서 혼자 맥주와 보드카를 마시고 잠들었던 터라 깊은 잠에 빠졌었다. 눈을 떴지만 쉬이 여전히 정신이 들지 않았다. 분명 이 호텔방엔 나 혼자인데 누가 날 뒤흔들어 깨운단 말인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이날은 홋카이도 여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8월 말에 나고야를 다녀왔었지만 헛헛한 마음이 도저히 달래지지 않아 귀국한 지 하루 만에 다시 급하게 삿포로로 떠났던 것이었다. 귀국 비행기는 오후 스케줄이었다. 술이나 마시고 푹 자고 일어나서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 있으려던 참이었다.


다시 한번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잠에서 확 깼다. 침대가 바이킹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머물었던 호텔방은 8층이었는데 알고 보니 고층일수록 지진의 흔들림을 체감하는 정도가 심하다고 했다. 두 번째 흔들림은 약 20초간 지속됐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쉽게 서지를 않았다. 지진이라는 것까지는 파악이 됐지만 이 높은 위치에서 이렇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전혀 교육을 받지 않았던 탓이다.


호텔방의 특성상 장식장이나 책장이 있지는 않아 무언가가 떨어져 다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에 들어가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바깥 복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만 겪는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단 여권과 카드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만을 들고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호텔 계단이 만원인 건 처음이었다.


아직 정전되기 전 호텔의 모습


03:29

1층으로 내려온 뒤 일단 호텔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9월 초 홋카이도의 새벽은 참 쌀쌀했다. 겨울로 접어들기 직전의 날씨다. 호텔 직원들은 로비에 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호텔이 주저앉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단은 바깥으로 나와버렸다. 우선 찬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야외 주차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차를 끌고 어디론가로 나갔다. 새벽 3시 반이었는데 도로에 비상등을 켜고 어딘가로 향하는 차량이 많았다. 도로변의 신호등과 전봇대가 위태 위태해 보였다. 나는 차를 렌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다시 호텔 안으로 돌아갔다.


20180906_040311.jpg


샹들리에가 떨어질 것을 대비한 호텔 직원들이 재빠르게 바리케이드를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한 프로토콜이 있는 걸까? 직원들은 호텔 바깥으로 나가지 말고 로비에 머무르라고 재차 말했다. 주로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머무르는 호텔이어서인지 한국 아줌마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웠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은 교회에서 단체관광을 온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었다. 한 중년의 사내가 배낭을 메고는 혼자 다급하게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줌마들이 "목사님 어디 가세요? 로비에 다 같이 있어요"라고 말하자, 그 목사라는 사람은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바깥으로 나가려고요"라면서 그냥 나가버렸다. 본인이 인솔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목사라면 자신의 신도들을 먼저 챙기고 안심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도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짐을 다 챙겨서 바깥으로 쌩 나가는 모습이 너무도 생생해서 아직까지 인상에 남아 있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보통 강진이 오고 난 이후 30분 이내에 여진이 추가적으로 온다고 했다. 30분 뒤에 또 크게 흔들릴 수 있으니 30분 뒤 경과를 보고 움직이는 게 좋다고 누군가 말을 했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로비에 앉아서 1시간 정도를 머물렀다. 4시가 넘어서도 별다른 여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일단 8층의 숙소로 다시 올라갔다. 나는 신발까지 다 신은 채로 일단 침대에 다시 누웠다. 전날 과음한 데다 여행의 피로까지 누적돼 있어서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06:10

잠에서 다시 깬 건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침대가 다시 크게 흔들렸던 것이다. 여진이구나 싶었다. 이 시간이면 지하철이 움직일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짐을 다 챙겨서 내려왔다. 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택시를 탔다. 가까운 역까지 이동하는데 1000엔이 넘는 요금이 나왔다. 불과 5분 정도 달렸을 뿐인데. 일본에서 어딘가 이동을 위해 택시를 타는 것은 정말로 가장 마지막에 생각해야 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그 와중에도 들었다.


마코마나이역에 도착하니 직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역 바깥에서 서 있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직원들은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다고 했다. 도시 전체가 전기가 나갔고 단수가 됐다는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호텔 조명은 비상전력으로 운영된 것이었다. 호텔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방에 정상적으로 머물기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 일단 걸어서 도심 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일단 내가 판단한 첫 목적지는 나카지마 공원이었다. 공항을 향하는 리무진이 출발하는 곳이다. 일단 공항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날은 출국날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공항에 가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이는 내 큰 착각이었다.